「황조가」

한자 黃鳥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길림성 통화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서정시가
작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저자 몰년 시기/일시 기원후 18년
배경 지역 고구려
정의

고구려 제2대 유리왕(瑠璃王)이 지은 서정 시가.

개설

고구려 제2대 유리명왕(瑠璃明王)[기원전 19∼기원후 18]은 이름이 유리(類利) 혹은 유류(孺留)라고도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본기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유리왕은 2년 가을 7월,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을 왕비로 맞았으나, 이듬해(기원전 17년) 겨울 10월에 왕비 송씨가 죽었다. 그래서 왕은 두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후처를 삼았는데, 한 사람은 화희(禾姬)이니 골천(鶻川) 사람의 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치희(雉姬)이니 한(漢)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그런데 두 여자는 서로 왕의 사랑을 차지하려 했으므로 화목하게 지내지 못했다. 이에 왕은 양곡(涼谷)에 동궁(東宮)과 서궁(西宮)을 지어 각각 따로 살게 하였다. 그 후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떠나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두 여인은 다투다가 화희가 치희에게 욕하며 말했다. “네가 한인의 집에 살던 비첩(婢妾)으로서 어찌 무례함이 이토록 심한가?” 하니,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왕이 돌아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채찍질하여 쫓아갔으나, 치희는 분함을 참지 못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돌아오던 유리왕이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꾀꼬리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 있어 노래를 부른 것이 「황조가」이다. 유리왕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즉석에서 노래한 것이니, 서정적인 노래이며 즉흥적인 사랑가이다. 가사가 짧은 점으로 볼 때, 간단한 민요조의 선율로 불렸을 것이다.

구성

4언 4구의 한역시이며, 창작 동기가 전한다.

내용

편편황조(翩翩黃鳥)[훨훨 나는 저 꾀꼬리]

자웅상의(雌雄相依)[암수 서로 노니는데]

염아지독(念我之獨)[나 홀로 외로우니]

수기여귀(誰其與歸)[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특징

시의 내용이 짤막하고 간결하여 누구라도 이 노래를 부르며 구애할 수 있으며, 창작 이후 집단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황조가」는 짧고 간결하여 누구라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고대의 남녀가 여럿이 모여 가무하는 축제 속에 ‘성적(性的) 의례(儀禮)’를 포함하는 제례 의식에서 이러한 노래를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오랜 전통으로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과 예(濊)의 무천(舞天) 같은 제천 의식이나, 3월 3일의 수렵제에서 남녀가 무리지어 가무(歌舞)하였을 때 사랑을 고백하는 「황조가」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구애(求愛)했을 것이므로 개인적인 서정 가요가 후대로 오면서 집단적 서정 가요로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간결하고 쉬운 노래일수록 저변 확대가 쉽기 때문에 「황조가」는 이런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곡이다.

참고문헌
  • 허남춘,「황조가 신고찰」(『황조가에서 청산별곡 너머』, 보고사, 2010)
  • 강명혜,「황조가의 의미 및 기능」(『온지논총』, 온지학회, 2004)
  • 임주탁·주문경, 「황조가의 새로운 해석」(『관악어문연구』 29집,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2004)
  • 권영철,「황조가의 신연구」(『국문학연구』 제1집, 효성여대, 1968)
  • 윤영옥,「유리왕 유리와 황조가」(『한국고시가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5)
  • 정병욱, 『한국고전시가론』, (신구문화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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