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渤海의 交通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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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말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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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시대의 주요 교통로
발해는 교통과 유통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나라였다. 발해는 사회적 생산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상품 유통이 성장했으며 그것은 교통 운수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국내에 도로망과 수로망을 정연하게 배치하고 대외 교통로도 널리 개척함으로써 발해의 교통 운수는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발해에는 당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로 통하는 다섯 개의 대외 교통로가 있었다. 영주도(營州道), 조공도(朝貢道), 거란도(契丹道), 신라도(新羅道), 일본도(日本道) 등 다섯 개의 기본 교통로는 해로 및 육로로 다른 나라에까지 이어지는 교통망으로 발전했다.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에 따르면 ‘용원의 동남쪽 연해는 바다를 끼고 있는데 일본도이고, 남해는 신라도이다. 압록은 조공도이고, 장령은 영주도이며, 부여는 거란도이다.’ 라고 되어 있다.
발해의 수도 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를 시발점으로 해 동남쪽으로 뻗은 일본도와 서남 방향으로 뻗은 신라도는 일본 및 통일 신라와 통하는 육로 노정이며 그것은 해로를 통해 다시 일본에, 육로를 통해 통일 신라의 수도까지 연장되었다. 상경 용천부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조공도와 영주도는 당나라까지 통했으며 서쪽으로 뻗은 거란도는 거란의 수도까지 연결되었다.
이 다섯 개의 대외 교통로는 동시에 국내 기본 간선 도로로서 여러 지선 도로와 각지에 뻗은 여러 도로망과 연결되는데, 기본 간선 도로는 국내의 흑룡강(黑龍江), 동류 송화강, 북류 송화강, 눈강(嫩江), 홀한하(忽汗河)의 수참 교통 운수망과 연결되어 그 발전을 촉진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이들 교통로는 동해와 서해의 대일 항로, 대당 항로와 연결됨으로써 대외적인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과 교류에 적극 이바지했다. 뿐만 아니라 5개의 대외 교통로는 당시 동북아 기본 교통로의 하나로서 동서방의 경제와 문화의 교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북한의 장국종은 발해 교통 발달의 특징을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수륙교통 운수망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고르게 퍼져 있었다. 둘째, 운수 수단이 다각적으로 발전하고 해양 기술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셋째, 교통 운수망 편성에서 육로와 수로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넷째, 발해의 수도 상경 용천부가 동, 서방을 연결하는 당대 교통 중심지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특히 발해에서 수상 운수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나라의 자연 지리적 조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발해는 영토의 서남부와 동부에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에 흥개호(興凱湖), 경박호와 같은 큰 호수들과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송화강, 요하(遼河), 목단강, 흑룡강, 우수리강 등 큰 강들이 있었으므로 수상 운수가 발전하기에 유리한 자연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송화강과 그 지류들은 분포의 특성 때문에 발해 시기 강·하천 운수에 널리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발해의 중심 지역에서는 아무리 외진 지역이라 하더라도 100여 리, 멀리는 200~300리 정도만 가면 송화강의 본류 또는 지류에 닿을 수 있었으므로 모든 지역에서 송화강까지만 물품을 운반하면 중심 지역의 어느 곳엔 수로를 이용하여 그것을 운반할 수 있었다.
발해에서 수상 운수는 각지의 특산물과 농산물, 그 밖의 여러 가지 물자 수송에 널리 이용되면서 군사 인원 수송을 비롯한 군사적 목적에도 이용되었다. 한편 발해 시기 강·하천에서 이용한 작은 배들 가운데는 큰 배를 모방하여 크기만 작게 한 것도 있었겠지만 특수한 형태의 배들도 있었다. 그러한 배들로서 통나무를 파서 만든 통나무배와 짐승 가죽으로 만든 가죽배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