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신앙

한자 四神圖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시대 고대/고대
정의

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 등의 사신(四神)이 동서남북 방위를 수호하면서 우주의 질서를 진호(鎭護)한다고 믿는 신앙.

개설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각 방위에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청룡[동쪽]·백호[서쪽]·주작[남쪽]·현무[북쪽] 등의 상징적 동물을 설정한 것을 사신이라 하며,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사신도라 한다.

사신은 성인이 태어나거나 나라 안에 길조가 있을 때 나타난다는 사령[四靈 : 용·기린·봉황·거북]에 대응시킨 것으로 사령 중 기린은 호랑이로, 거북은 현무로, 봉황은 주작으로 대체되었다.

사신에 대한 관념은 오행 사상이 발달한 전국(戰國) 시대 말부터 진한(秦漢) 시대에 걸쳐 체계화 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漢)나라 때부터 왕실의 안녕과 묘주(墓主)의 사후(死後) 영속을 위해 궁전과 묘실 내부에 사신을 배치함으로써 이들 공간을 수호하는 역할과 삿된 기운을 막는 벽사(辟邪)의 성격이 함께 부여되었다. 또한 사신은 군대의 깃발에도 그려졌고, 좌(左)청룡·우(右)백호·전(前)주작·후(後)현무라 하여 풍수지리에도 적용되었다.

사신 신앙의 전래와 수용

우리나라에서 사신의 개념이 형성되고 그 형상이 표현된 것은 삼국 시대이며, 삼국 중 가장 먼저 사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이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 사신이 보이는 것은 중국 문화의 전래 및 수용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4, 5세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부터 사신도가 나타나는데 사신도가 등장하는 고구려 고분 벽화로는 집안 지역의 무용총(舞踊塚), 장천 1호분(長川一號墳), 환문총(環文塚), 삼실총(三室塚), 통구 사신총(通溝四神塚), 오회분(五盔墳) 5호묘, 오회분 4호묘 등이 있고 평양(平壤) 지역의 요동성총(遼東城塚), 약수리 고분(藥水里古墳), 감신총(龕神塚), 팔청리 고분(八淸里古墳), 쌍영총(雙楹塚), 성총(星塚), 수렵총(狩獵塚), 덕화리 1호분(德花里一號墳), 덕화리 2호분, 우산리 1호분(牛山里一號墳), 개마총(鎧馬塚), 진파리 1호분(眞坡里一號墳), 진파리 4호분, 호남리 사신총(湖南里四神塚), 내리 1호분(內里一號墳), 강서 대묘(江西大墓), 강서 중묘(江西中墓) 등이 있다.

고구려의 사신도는 백제에도 영향을 미쳐 공주의 송산리 고분(宋山里 古墳)과 부여의 능산리(陵山里) 고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고려 시대에는 석관(石棺) 측면에 부조(浮彫)로 표현된 사신을 통해 사신도의 전통이 고려 시대 묘제(墓祭)에도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에는 의장기 깃발과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에서 사신을 살필 수 있다. 『산릉도감의궤』에 그려진 사신도는 산릉도감에서 제작한 찬궁(攢宮)[국왕이나 왕후를 임시로 묻는 곳] 내부에 붙이는 그림으로 죽은 자를 위한 공간에 사용되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삼국 시대의 무덤 벽화와 고려 시대의 석관에 그려진 사신도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사신도의 형상은 시대마다 다소의 양식적 차이는 있지만, 현실과 상상의 동물이 복합된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의 사신 위치와 형태적 특징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사신은 인물 풍속도를 위주로 한 고분에서는 천정 고임부나 벽면에 여러 제재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사신도 중심의 고분에서는 벽면에 독자적인 제재로 표현된다. 대체로 4∼6세기 초중반으로 편년되는 고분에는 사신도가 인물 풍속도와 함께 그려지고, 6세기 중후반∼7세기 초 고분에는 사신이 네 벽면의 주(主) 제재로 등장한다.

인물 풍속도가 네 벽면의 주 제재로 다루어지고 사신도가 천정 고임부에 그려진 고분으로는 집안 지역의 무용총과 장천 1호분, 평양·안악 지역의 쌍영총, 덕화리 1호분, 덕화리 2호분, 수렵총 등이 있다. 또한 사신도가 네 벽면의 주 제재로 다루어지면서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고분은 집안 지역의 통구 사신총, 오회분 4호묘, 오회분 5호묘가 있고 평양·안악 지역의 진파리 1호분, 강서 대묘, 강서 중묘 등이 있다.

사신 중 청룡과 백호는 홀수로, 주작은 암수 쌍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현무는 뱀과 거북의 자웅합체(雌雄合體)로 그려진다. 그 배경에는 청룡과 백호는 벽사의 영물(靈物)로, 주작과 현무는 음양 조화의 신수(神獸)로 여겨진 것과 상호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신 중 청룡은 대개 몸에 뱀 비늘이 있고 눈에 머리에는 뿔이 나 있으며 입에서는 화염을 뿜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5세기 중엽 이후의 고분 벽화에서 청룡의 목 뒤에 불꽃과 유사한 표현이 덧붙여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용의 승천에 필요한 매개물로 인식된다.

백호는 호랑이의 특징을 반영한 호피문(虎皮文)이 표현되며 혀를 길게 내밀고 포효하는 모습으로 그 위용을 나타낸다. 하지만 인물 풍속도를 위주로 한 초기 고분에서는 목과 몸통, 꼬리 등이 호랑이보다는 용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주작은 통상 봉황과 유사한 모습으로 표현되나 무용총과 같은 초기 고분에서는 장닭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이후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이 가미되어 서조(瑞鳥)로서의 측면이 강조된다.

거북과 뱀으로 표현되는 현무는 청룡, 백호, 주작과는 달리 실재하는 동물로 구성되었고 뱀이 거북의 몸을 휘어 감고 합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현무 표현에서 뱀은 수컷 즉 양(陽)을 나타나며 거북은 암컷 즉 음(陰)을 상징한다. 고구려 초기 고분에서는 현무의 뱀과 거북 머리가 길짐승처럼 표현되지만 후기 고분에서는 파충류와 유사하게 그려진다.

고구려 초기 고분에 그려진 사신은 몸의 비례와 균형도 잘 맞지 않고 여러 제재의 하나로 그려지는 등 벽화에서의 비중도 크지 않다. 그러나 6세기 중반 이후부터 독자적인 제재로 자리 잡게 되고, 그려지는 위치도 천정 고임부에서 벽면 상단과 벽면 전체에 표현됨으로써 그 비중도 높아지며, 표현도 세련되고 자연스러워진다.

의의와 평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는 후기 고분으로 갈수록 그 비중이 커지는데 이는 고구려 사회에서 오행 사상의 영향이 확대됨으로써 사신에 대한 인식도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통구 사신총과 강서 대묘와 같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의 후기 고분에 그려진 기운생동하고 세련된 모습의 사신도를 통해 고구려의 회화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는 삼국 시대 우리나라에서 사신 신앙이 수용·전개되었고 그 형상이 표현되었음을 살필 수 있음은 물론, 고구려의 사신 신앙의 전통이 백제, 고려, 조선으로 그 맥을 이으며 1,000년 이상 전승되었다는 점에서 그 유구한 역사성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 『爾雅』
  • 『淮南子』
  • 전호태, 『고분 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풀빛, 1999)
  • 김용준,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열화당, 2001)
  • 윤진영, 「조선왕조 산릉도감 의궤의 사수도」(『인조장릉산릉도감의궤』,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김주미, 「삼족오·주작·봉황 도상의 성립과 친연성 고찰」(『역사 민속학』31, 한국 역사 민속 학회, 2009)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