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朴鬥南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친일파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훈춘정의단 부단장 겸 선전부 정치과장 |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12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6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7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8월 |
| 출생지 | 길림성(吉林省)연길현(延吉縣) 월청구 |
| 학교|수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하얼빈 아성현 |
| 활동지 | 용정시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 활동지 | 길림성 훈춘현 |
| 활동지 | 길림성 훈춘현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길림성 연길현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변절자로 알려진 인물.
박두남은 1901년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월청구 출신이다. 1925년 12월 용정촌(龍井村) 독서회 강연대의 일원으로 지방순회에 참여했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사건’ 당시 검거를 모면했다. 1928년 봄 아성현(阿城縣)에서 조선 공산당 만주총국[ML파] 북만도(北滿道) 제2구 책임자가 되었다. 1930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1932년 1월 훈춘현 별동대 결성에 참가했다. 1932년 6월 별동대를 영북 유격대로 개편하고 정치위원이 되었다. 1933년 초 영북·영남 유격대를 통합하여 훈춘현 항일유격총대를 결성하고 제3대대 정치위원이 되었다. 1933년 7월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순시원 김홍선[金洪善, 潘慶由]에게 파벌분자·민생단원으로 지목되어 당적을 박탈당하고 유격대 정치위원직을 해제당했다. 박두남은 이에 불복하여 김홍선을 살해하고 도망친 후 1934년 봄 훈춘 일본헌병대에 투항했다. 이후 친일단체 훈춘 상조회 별동대장, 훈춘 정의단 부단장 겸 선전부 정치과장으로 활동하며 항일유격구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을 원조했다. 1934년 겨울 일본군의 대황구(大荒溝) 유격근거지 토벌작전에 참가했다. 1935년 초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에서 반일 분자 체포 활동에 종사했다. 1937년 일본 정탐기관에 고용되었다. 1945년 8월 일제 패망 직후 장춘(長春)에서 동북공산주의동맹 결성에 참여했으나 친일경력이 문제가 되어 제명된 후 처벌이 두려워 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