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樸東和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1960~1970년대 활동한 극작가.
박동화는 극작가로서 극단 「중앙무대」「협동 예술좌(協同藝術座)」 등의 멤버이며 예총 전북 지부장·전북 연극 협회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1년 4월 21일 전남 영암군(靈巖郡) 시종면(始終面) 월악리(月岳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덕상이다.
1931년 경성 중앙 불교 전문 학교를 졸업한 이후 1936년 일본동경 학생 예술좌에 입단하여 연극을 배웠다. 1937년에는 극단 ‘조선 연극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50년에는 목포로 와서 1955년까지 편집 국장을 맡았다. 1956년에는 전북대학교 대학 신문 편집 국장을 역임하였다. 1959년 희곡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61년에는 전주에서 극단 ‘창작 극회’를 창단하였다. 이때 자신이 직접 지은 작품인 「여운」을 공연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두 주막」(1964), 「망부석」(1970), 「산천」(1973), 「생수」(1974), 「등잔불」(1978) 등의 작품을 냈다. 1976년 전북 대학교 대학 신문 편집 국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두 주막』·『여운(餘韻)』·『공사장(公社長)』·『창문을 닫아라』[長幕戱曲]가 있다. 그의 사후에 희곡집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1991)가 발간되었다.
1964년 전라북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