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喜昌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연길현 고려 공산 청년회 책임비서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8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6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7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0월 |
| 출생지 | 미상 |
| 활동지 | 상해 |
| 활동지 | 블라디보스토크 |
| 활동지 | 연길현 옹성랍자 |
| 활동지 | 연길현 용정 |
| 활동지 | 연길현 용정 |
일제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희창은 1921년경 상해파 고려 공산당에 입당했다. 1923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적기단(赤旗團) 건립에 참여했다. 1923년 3월 돈화현(敦化縣)에서 적기단 단원 자격으로 간도대한국민회 간부와 연계를 맺었다. 1923년 8월 연길현(延吉縣) 옹성랍자(甕聲磖子)에서 고려 공산당[상해파] 만주지방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6년 6월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에 입당했으나 그해 겨울 화요파 간부의 당내 독주를 비판하고 탈당하였다. 그 후 1927년 7월 연길현 용정(龍井)에서 상해파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재만 조선 공산주의자 단체를 결성했다. 같은 시기 고려 공산 청년회(상해파)를 결성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사건’ 때 소련으로 피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