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

한자 金弘宣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선전부 책임|중국 공산당 영안중심현위원회 서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30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2월
활동 시기/일시 1933년
몰년 시기/일시 1933년 7월
출생지 함경북도 성진
거주|이주지 화룡현(和龍縣) 평강(平崗)
활동지 길림성 용정
활동지 길림성 화룡현
활동지 길림성 영안현
활동지 길림성 영안현
정의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함경북도 성진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홍선은 함경북도 성진 출신으로, 김책(金策)의 맏형이다.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화룡현(和龍縣) 평강(平崗)으로 이주했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1921년 4월 용정(龍井)동흥 중학(東興中學) 건립에 참여해 1925년에는 동흥중학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으로 들어와 모금활동을 하였다. 1925년 조선 공산당 조직에 참여했으며, 조선 공산당 중앙의 승인을 얻기 위해 국내로 파견되었다.

김홍선은 1926년 동만(東滿) 청년 총연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6년 간도일대에서 계급의식 고취를 위한 순회강연단에 참여했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사건’ 이후 새로 재건된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화요파]의 선전부 책임자가 되었다. 1930년 초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북만특위(北滿特委)에서 활동했다. 1930년 10월 중국 공산당 영안현(嶺安縣) 위원회를 건립하고 서기가 되었다. 1931년 12월 중국 공산당 영안 중심 현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33년 7월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순시원이 되어 유격대 내 민생단 혐의자 숙청을 주도하다가 박두남(朴斗南)에게 살해당하였다.

참고문헌
  • 강만길·성대경 엮음, 『한국 사회주의 운동 인명 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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