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忠鎮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동북 항일 연군제4사 제3련 제1배장 |
| 출생 시기/일시 | 191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9년 |
| 출생지 | 함경북도 경성 |
| 거주|이주지 | 연길현(延吉縣) 소연집구(小煙集溝) 태암촌(太岩村)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함경북도 경성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충진은 1910년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지주집 머슴이었다. 1926년 봄 연길현(延吉縣) 소연집구(小煙集溝) 태암촌(太岩村)으로 이주하였고, 1931년 가을 추수 투쟁에 참여했다. 1932년 춘황 투쟁(春荒鬪爭)을 겪으며 공산 주의 사상을 수용하였으며, 그 해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했다.
1932년 여름 김충진은 형 김철진(金哲鎭)과 함께 항일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1932년 말 연길현 의란구(依蘭溝)에서 유격대 통신 사업에 참여했다. 1935년 화룡현(和龍縣) 신안촌(新安村) 전투에 참전했다. 1936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동북 항일 연군 제4사 제3련 제1배장이 되었다. 1936년 겨울 돈화현(敦化縣) 목단하(牧丹河)지구에서 유격투쟁에 참가했다. 1937년 4월 안도현(安圖縣) 노진창(老鎭倉) 대사하(大沙河)에서 전투했다. 1939년 여름 연길현 천보산(天寶山) 광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