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柱鉉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동북 항일 연군제2군 제6사 제7단장 |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8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6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
| 출생지 | 길림성(吉林省) 화룡현(火龍縣) 복동(福洞) 토성동(土城洞) |
| 거주|이주지 | 복동(福洞) 남석촌(南石村) |
| 거주|이주지 | 안도현(安圖縣) 대사하(大沙河) 고등촌(高登村) |
| 거주|이주지 | 화룡현 어랑촌(漁浪村) |
| 활동지 | 복동(福洞) 남석촌(南石村)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화룡현 장백현 일대 |
| 활동지 | 몽강 서배자(西排子)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길림성 화룡현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주현은 1904년 길림성(吉林省) 화룡현(火龍縣) 복동(福洞) 토성동(土城洞)에서 태어났다. 1918년 복동 남석촌(南石村)으로 이주했다. 1924년 연해주로 갔다가 1926년 남석촌에 돌아와 청년 친목회를 조직하고 야학강습 등 계몽사업을 했다. 1928년 안도현(安圖縣) 대사하(大沙河) 고등촌(高登村)으로 이사하였다. 1930년 농민협회를 조직했다. 1931년 만주 사변 후 화룡현 어랑촌(漁浪村)으로 이주했다. 1933년 봄 화룡현 항일 유격대에 입대하여 그 해 가을 연길현(延吉縣) 연집강(延集崗) 자위단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했다.
1934년 봄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독립사(獨立師) 군수과에서 활동했다. 1935년 인민혁명군 제2군 제2단에서 배장, 연장을, 1936년 연대장, 별동대장을 지냈다. 1936년 5월 장백(長白) 근거지를 창설을 위한 선발대로 파견되었다. 1936년 8월 동북 항일 연군 제2군 제6사 부관이 되어 후방지원을 담당했다. 그 무렵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들어와 무장 투쟁과 정치 선전 사업을 수행했다.
1937년 제6사 제7단장으로 압록강 연안의 도천리(挑泉里)·이명수(鯉明水) 전투에 참가했다. 6월 보천보(普天堡) 전투에 참가하여 정찰 임무, 선전 사업, 군수 운반 사업을 맡았다. 1937년 가을 제6사 사령부 부관이 되었다. 1938년 제1로군 제2방면군 사령부 부관으로서 장백, 임강(臨江)에서 전투했다. 1938년 가을 몽강(濛江)에서 겨울철 밀영(密營)을 마련하기 위해 몽강 서배자(西排子)로 가다가 토벌대에 발각되어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