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相和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중국 공산당 왕춘현위원회 서기|친일 밀정 처단 |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12월 26일(음)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9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1월 |
| 몰년 시기/일시 | 1931년 2월 3일 |
| 출생지 |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두텁골(厚洞) |
| 거주|이주지 | 왕청현(汪淸縣) 하마탕(哈蟆塘) |
| 활동지 | 왕청현 |
| 활동지 | 왕청현 |
| 활동지 | 왕청현 하마탕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길림성 연길현 두텁골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상화는 음력으로 1900년 12월 26일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두텁골(厚洞)에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소학교를 중퇴하였다. 1924년 가을 왕청현(汪淸縣) 하마탕(哈蟆塘)으로 이주했다. 1925년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비밀혁명단체 활동에 참가했다. 1928년 여름에 하마탕에서 호조회(互助會)·청년회·소년단 등을 조직했다. 1930년 ‘간도 5·30 봉기’에 가담하여, 하마탕에서 농민 적위대·반제 동맹·아동단·소년 선봉대 등을 조직했다. 또한 1930년 남하마탕·목단지촌(牧丹地村)에서 활동하던 일본 밀정을 습격하여 총살했다. 1930년 9월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하마탕구위원회 서기를 맡았다. 1931년 1월 왕청현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같은 달 반일유격대를 조직하고자 협의하던 중 600여 명의 길림 토벌대에 체포되어 2월 3일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