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奉益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일본 밀정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양말직공상조회|간도북풍회 공산 주의 그룹|재동만조선청년총동맹 강령기초위원|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7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8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출생지 | 경상남도 남해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왕청·화룡·훈춘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 활동지 | 영안현 영고탑 |
| 활동지 | 길림성 용정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경상남도 남해 출신 일본 밀정.
김봉익은 1904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나 일본도쿄에서 유학했다. 1924년 11월 용정(龍井)에서 노동 동맹을 결성하고 노동 학원 설립에 참가하였다. 이 무렵 수상 조합(水商組合)과 양말 직공 상조회 결성에 참여하고, 간도 북풍회 공산주의 그룹을 결성을 주도했다. 1926년 1월 재동만(東滿) 조선 청년 총동맹 창립 대회에 참여하고 강령 기초 위원이 되었다. 1926년 2월 간도 노동회 결성에 참여하고 간부가 되었다. 1926년 4월 용정 소년회를 결성하고 회장이 되었다.
1927년 5월 조선 사회 단체 중앙 협의회 창립 대회에 간도 노동회 대표자로서 참석했다. 김봉익은 1927년 7월 동만 청년 총연맹 상무 집행 위원이 되었고, 8월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에 입당했다. 이즈음 일본 경찰의 밀정이 되어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 사건’의 단서를 제공했고, 이후 1929년까지 밀정으로 활동했다.
김봉익은 1928년 5월 북풍회에 대한 검거를 피해 소련연해주로 이동했다. 1929년 5월 대성 중학(大成中學) 교사로 재직하면서 용정 청년총연맹이 개최한 상해(上海) 5·30 학살 4주년 기념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1930년 일본 경찰에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었다. 1931년 취조관에게 줄곧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일해 왔음을 토로하고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