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矽極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 집행위원 |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4년 |
| 출생지 | 함경북도 성진군 학동면 |
| 거주|이주지 | 연길현 지인향 국자가 하장리 |
| 활동지 | 상해 |
| 활동지 | 상해 |
| 활동지 | 길림성(吉林省) 영안현(寧安縣) 영고탑(寧古塔 |
| 활동지 | 간도 |
| 활동지 | 길림성 연화현 |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함경북도 성진군 학동면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규극은 1884년 함경북도 성진군 학동면에서 출생하였다. 연길현 지인향 국자가 하장리에 거주하였다. 1921년 고려 공산당 상해파에 가입하여 책임자가 되었다. 1923년 5월 의열단 폭탄 사건으로 상해[上海]에서 프랑스 조계 경찰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1927년 4월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에 입당하여 동만구역국 집행위원을 지냈다. 이 무렵 북간도 민립 중학 기성회(民立中學期成會) 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 사건’때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8년 12월 경성 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출옥 후 북간도로 돌아와 1930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여 연화현(延和縣)위원회 비서가 되었다. 1932년 1월 중국 공산당 동만 특위 비서가 되어 반일 유격대 결성에 참가하였다. 1934년 초 일본군의 토벌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