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姜泰範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친일 밀정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간도협조회 본부 특별공작대 정보계 특무 |
| 출생 시기/일시 | 1906년 5월 27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1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10월 |
| 몰년 시기/일시 | 1945 |
| 출생지 | 함경북도 성진 |
| 거주|이주지 | 길림성 연길현 장은평 |
| 학교|수학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활동지 | 장은평 |
| 활동지 | 길림성 연변 |
| 활동지 | 혼춘현, 안도현 |
함경북도 성진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일본 밀정.
강태범은 1906년 5월 함경북도 성진부 학중면 농성동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 연길현 장은평(藏恩坪)으로 이주하여, 소영자 학교(小營子學校), 동흥 중학(東興中學)을 졸업하였다. 동흥 중학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졸업 후 자신의 집이 있는 장은평 소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1927년 1월 고려공산 청년회 만주 총국에 가입하여 장은평 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 사건’ 때 일제의 검거망을 벗어났다. 1928년 2월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화요파]에 입당했다. 1930년 3월 전동만(全東滿) 폭동 위원회의 지도 아래 반일 폭동에 참가했다. 이 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1년 12월 경성 지법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변절하여 1934년 친일단체 간도 협조회(間島協助會)에 참가했다. 강태범은 1934년 12월 혼춘현(琿春縣) 이도구(二道溝) 구회장으로서 중국 공산당태양동(太陽洞) 지부 서기 최재여를 체포해 변절시켰다. 특히 1935년 10월에는 간도 협조회의 본부 특별 공작대 정보계 특무로 안도현(安圖縣)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이 간도 협조회에서 활동한 것을 근거로 하여 1945년 8월 해방 후 친일파로 지목되어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