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중학 사은 기념비

한자 昌東 中學 恩師 紀念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소영진 민흥촌 와룡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기념비
크기 높이 : 1.87m, 너비 : 0.5m, 두께 : 0.8m
건립 시기/일시 1935년 9월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3년
현 소재지 연길시 소영향 민흥촌 와룡동
원소재지 국자가 서쪽 교외 와룡동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연길시(延吉市) 소영향(小營鄕) 민흥촌(民興村) 와룡동(臥龍洞)에 있는 창동 학교(昌東學校) 은사들의 업적 기념비.

개설

창동 학교는 1907년 국자가(局子街) 서쪽 교외의 와룡동에 세워졌다. ‘창동’이란 해동성국(海東盛國)인 조선의 창성을 바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1910년 중학부를 부설하고 학교 이름을 창동 학원으로 고쳤다. 당시 원장은 오상근, 부원장은 이병휘, 남성우가 맡았고, 신홍남·김종만·홍우만·이진호·김리택·송창희·서성권·문경 등이 교원을 맡았다. 중학부에는 80여 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는 러시아에서 유학 오는 학생도 있었다.

창동 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근대 과학의 전수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항일 민족 의식을 양성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민족 의식과 항일 사상을 키울 수 있는 교재를 선택하여 가르쳤다. 중학부에는 항일 무장 투쟁을 위해 군사 훈련과를 설치 교육하였다. 1925년까지 이곳에서 중학부를 졸업한 학생은 200여 명이 넘었다. 여기서 졸업생 중 다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왕청(汪淸) 나자구(羅子溝)에서 설립된 사관 학교에 진학하여 군사 교육을 받은 후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였다.

건립 경위

1920년대 경신 참변 때 창동 학교 대부분의 교원들은 외지로 흩어져 학교의 수업이 중지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서무를 맡아보던 김용권과 김기연이 창동 중학 원우회의 회비를 보관해두었다. 1935년 9월 이 자금으로 학교 졸업생인 정제환 등이 지금의 연길시 소영향 민주촌 와룡동에 모교에 대한 그리움과 선생님들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뜻으로 비석을 세웠다.

위치

지금의 연길시 소영향 민흥촌 와룡동에 위치해 있다. 연길시 중심에 있는 공원교에서 서쪽으로 뻗은 큰길을 따라 연변대학, 원예 농장, 길흥촌을 지나면 연변 건축 재료 공장에 이르게 된다. 이 건축 재료 공장의 북쪽에 자그마한 개울을 끼고 들어 앉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소영향 민흥촌 소재지인 ‘상발원’이란 곳이다. 이 상발원에서 개울을 거슬러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3㎞ 정도 올라가면 와룡동에 이르게 된다. 이 마을 서쪽 비탈에 사은 기념비가 있다.

형태

사은 기념비의 높이는 1.8m 정도이며, 한백옥으로 다듬어진 비석과 개두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비석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비석 정면은 남쪽을 향해 있으며, ‘사은 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금석문

앞면 : 사은 기념비

뒷면 : 사립 창동 중학 원장 오상근, 이연휘, 남성우.

은사 신흥남, 김종남, 홍우만, 이진호, 김리택, 송창희, 서성권, 문경.

창동 학원은 기원 1907년 창립되었다. 즉 한민족이 간도에 이주해온지 약 40년이 되는 때에 뜻있는 와룡의 여러 지사들이 처음으로 소학교를 창립하였는 바, 이는 본원의 기원이다. 3년 후 여러 교원들이 협력하여 새로 중학부를 설치하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온갖 심혈을 몰부어 우리들을 교양하였다. 위대하도다 선생님들의 은혜. 아름다워라 창동. 이 원의 출신인 200여 명은 그들의 은공을 잊지 못하여 비석을 세워 칭송하노라.

서쪽면 : 창동 학교 원우회 회원 일동이 삼가 세움

동쪽면 : 기원 1935년 9월 12일

현황

2003년 6월 연길시 문물관리소·민주촌민위원회·민주 소학교에서 연합으로 사은비에 대하여 보수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비석을 중심으로 10m 이내 지역을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콘크리트 기둥에 철 파이프로 된 난간으로 기념비 보호 시설을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창동 학교는 설립 이후 북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반일 교육 기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가운데 1920년 1월 4일에 발생한 ‘15만원 사건’의 주역으로 참여하였던 한상호최봉설창동 학교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모교 은사님들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북간도 지역 대표적인 기념비로 육영 사업에 모든 것을 헌신한 선생님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좋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강용권, 『죽은 자의 숨결, 산 자의 발길』(장산, 1996)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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