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민회 총부 옛터

한자 墾民會 總部 옛 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하남가 서광호동 1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연길 도윤 공서 사무 청사
관련인물 김약연, 백옥포, 도성, 박찬익
소유자 연변 홍업 건물 기지 개발 유한 공사
조성|건립 시기/일시 1913년 4월 1일
문물 지정 일시 1999년
현 소재지 연길시 하남가 서광호동 17호(延吉市 河南街 曙光胡同 17號)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하남가 서광호동에 있는 간민회 총부의 터.

개설

간민회는 1913년 4월 1일 중국의 설립 비준을 받아 북간도에 세워진 한인 자치 조직이자 독립운동 단체이다. 임원으로는 회장 김약연, 부회장 백옥포, 총무 도성, 서기 박찬익 등이었다. 문맹 퇴치와 식산 흥업 등 신문화 운동을 통해서 한인들의 생활을 보호하고 민족 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14년 3월 원세개의 ‘지방 연성 자치제’ 폐지에 따라 해체되었다.

건립 경위

간민회간민 교육회를 토대로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간민 교육회는 1910년 3월 중순에 한인들의 생활과 민족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세워진 단체였다. 1911년 신해 혁명을 성공시킨 손문 정부가 ‘연성 자치제(聯省自治制)’를 주장하자, 북간도의 한인 지도자들은 간민 교육회를 자치 조직인 ‘간민 자치회’로 발전시켜 항일 민족 운동의 기지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이동춘·정재면·박찬익·장기영 4명을 북경에 파견하여 부대통령인 여원홍(黎元洪)을 만나 설립 인가와 원조를 요청하였다. 여원홍은 ‘자치’라는 글자를 삭제하고 ‘간민회’의 설립만 비준해 주었다. 한인 지도자들은 1913년 2월 4일 총회를 열어 단체의 명칭을 간민회로 결정하였으며, 3월 길림성 동남로 관찰사서에 정식 설립 승인을 받았다.

위치

간민회 본부 옛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그러나 연길 시내 중앙에 자리 잡은 연길 도윤 공서 2층에 있었다는 기록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연길 도윤 공서란 길림 변무독판 공서가 있던 자리인데, 후에 길림 동남로 병비도대 공서, 길림 동남로 관찰사서가 되었다가 1914년 6월에 연길 도윤 공서가 된 현재의 도윤 공서[道尹樓]를 말한다.

현황

1999년 간민회 총부 옛터는 길림성 문물 중점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2012년 현재 주변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고, 연길 도윤 공서 건물은 연변 홍업 건물 기지 개발 유한 공사[건축 회사]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건물 1층은 ‘간도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오록정(吳祿貞)의 사적을 알리는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의의와 평가

간민회는 창립되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존속하였지만,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이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계봉우간민회의 역할에 대해 “간북 동포에게 조국 정신을 고취하여 사상 변천의 일대 새 기원을 삼을만하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1919년 3·1 운동 이후 대한 국민회를 비롯하여 북간도 지역에서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들의 근간이 되었다.

참고문헌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 독립 기념관, 한국 근현대사 학회, 『국외 항일 운동 유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 1(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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