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十里坪 虐殺 事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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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십리평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한인 학살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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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인물/단체 | 북로군정서 |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0년 10월 22일 |
| 발생|시작 장소 | 왕청현 십리평 |
1920년 10월 20일 일본군 19사단 기무라[木村] 지대가 십리평에서 한인 30여 명을 학살한 사건.
1920년 10월 9일 조선 주둔 일본군은 약 2만의 병력으로 간도 지역을 무력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일본군 병력의 주 전력은 조선 주둔 일본군 19사단이었다. 19사단은 기림 지대(磯林支隊)·목촌 지대(木村支隊)·동 지대(東支隊) 등으로 나누어 간도 지역을 무력 침공하였다. 회령에 위치한 보병 제38여단 사령부와 보병 제75연대를 근간으로 한 기림 지대는 주둔지와 가까운 훈춘 방면으로 침략을 시도하였다. 나남에 위치한 보병 제76연대를 중심으로 목촌 지대는 온성에서 왕청 방향으로 침략을 시도하였다. 또한 나남에 위치한 보병 제73연대 제2대대, 제73연대 제3대대를 근간으로 하는 동 지대는 회령 등지에서 용정 방면으로의 침략을 시도하였다.
이들 간도 침공 일본군 부대들은 간도 일대의 한인들을 불령 선인이라는 명목으로 1920년 10월부터 1921년 1월까지 한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고, 한인 부락을 초토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무자비하고 잔악한 방법으로 한인을 학살하고 부락을 방화하고 약탈하였다. 이러한 일본군의 대대적인 간도 지역 한인 학살을 ‘간도 참변’ 혹은 ‘경신 참변’이라 한다.
십리평은 지금의 왕청현 십리평향 장영촌(長榮村)에 해당되는 곳이다. 장영촌은 십리평향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약 2㎞ 떨어진 산중에 자리 잡고 있는데 장영촌의 원 이름이 십리평이다.
1920년 10월 22일 일본군 19사단 기무라[木村] 지대[76 연대]는 마을에 쳐들어와서 독립군에 식량을 공급하고 병영 건설에 참여하였으며 정보 연락 사업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북로 군정서 병영뿐만 아니라 마을의 민가 20여 채를 몽땅 소각하였다. 이위로·김입법·김도화·김병우·엄재현·최준천·신속락·유재지·신순수·신태근·한순규·김정환·조희원·원재용·한재원·최일원·이경적·한리순·한수석·방인수·신태영·최흥천·최흥순·신순호·조련원·장일동·최학천·한이순·최학천·최학순·조사원·조달원·장사천·윤재원·박팔봉·김성환 등 30여 명이 학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