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하곡 전투

한자 古洞河谷 戰鬪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관련인물/단체 홍범도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0년 10월 25일
발생|시작 장소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고동하곡
정의

1920년 10월 화룡시 고동하곡에서 홍범도 부대가 이이노 소좌가 지휘하는 2개 소대를 전멸시킨 전투.

개설

고동하곡 전투는 청산리 전투 가운데 하나이다.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지휘하는 연합 부대가 일본군 아즈마 지대의 토벌에 반격하여 백운평·어랑촌·완류구·만기구·맹개골·시거우·천보산·고동하곡 등지에서 진행한 10여 차례 전투를 말한다.

고동하곡 전투는 10월 25일 고동하 영림소 남쪽 10㎞ 되는 서쪽 산에 1143 고지 부근의 고동하곡에서 홍범도 부대가 이이노 소좌가 지휘하는 추격대를 매복하고 있다가 적군 2개 소대를 거의 전멸시킨 것을 일컫는다.

역사적 배경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간도 지방에서 한인 무장 부대들의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10월 2일 간도 지방으로의 진출을 구실로 훈춘 사건을 조작하고 10월 14일 본격적인 간도 지방 무력 침공을 선언하였다.

1920년 10월 17일부터 본격적인 군사 행동에 들어간 일제는 조선 주둔 일본군 19사단을 중심으로 약 2만 명이 넘는 병력을 작전에 투입하였다. 이때 용정·국자가[연길]·두도구 방면의 초토를 책임진 아즈마 지대는 10월 17일 홍범도 부대와 김좌진 부대가 어랑촌, 청산리 부근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10월 18일에 부대를 나누어 삼도구 청산리 부근의 김좌진 부대와 와룡구 어랑촌 부근에 있는 홍범도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아즈마 지대 중 홍범도 부대의 토벌을 담당한 이이노 대대는 10월 22일 완류구에서 홍범도 부대에 타격을 입고, 천수동에서도 김좌진 부대와 홍범도 부대의 연합 작전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이어 홍범도 부대가 천보산 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에 큰 피해를 입히자 이이노 부대는 홍범도 부대를 계속 추격하였다.

경과

고동하곡 전투는 고동하 영림소 남쪽 10㎞ 되는 서쪽 산에 1143 고지 아래 골짜기에서 진행되었다. 일본군 이이노 소좌가 지휘하는 추격대는 홍범도 부대를 찾아 헤매다가 10월 25일 밤 10시에 고동하곡[오도양차 남쪽, 즉 지금의 고동하 임장 남쪽] 10㎞ 부근에서 홍범도 부대를 발견하고, 밤 12시에 2개 소대의 병력으로 홍범도 부대를 일거에 소멸하려 하였다.

이를 간파한 홍범도 부대는 불모지를 만들어 적을 미혹시킨 후, 삼림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들에게 반격을 가하였다. 45분간의 격전을 거쳐 적군 2개 소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나머지 패잔병들은 부근의 1143 고지로 도망쳤다.

결과

고동하곡 전투를 마지막으로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연합 부대는 10월 26일 낮부터 일본군 추격대의 포위 토벌망을 벗어나 안도현 황구령 방면으로 향하였다. 이리하여 1920년 10월 21일 아침부터 1920년 10월 26일 새벽까지 6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 『개척』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1), 민족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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