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삼규

한자 白三奎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삼원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항일의병|대한독립단 부총재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1895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몰년 시기/일시 1920년
추모 시기/일시 1968년
출생지 평안북도 태천
거주|이주지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활동지 원주
활동지 관전현(寬甸縣)과 환인현(桓仁縣)
활동지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
정의

한말 의병장이자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가계

장남 인해(仁海), 차남 인제(仁濟)도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백삼규는 평안북도 태천 출신이다. 자는 현복(賢復), 호는 온당(溫堂).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일제에 의해 시해 당하자 의병장 유인석(柳麟錫)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백삼규는 남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삼원보(三源堡) 에서 조병준(趙秉準) 등과 함께 관전현(寬甸縣)과 환인현(桓仁縣)을 근거로 농무계(農務契)와 향약계(鄕約契)를 조직하여 애국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한편,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3·1 운동 후 조맹선(趙孟善) 등과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여 부총재로서 만주 각 현에 독립지단을 조직, 강화하였다. 또한, 일제의 앞잡이 기관인 보민회(保民會)·일민단(日民團)·강립단(强立團) 등을 숙청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각 현(縣)에 지단(支團)·분단(分團)을 설치하고 보민회(保民會)·강립단(康立團) 등 친일단체의 숙청에 노력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외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과 지부를 설치하고, 만주지역에는 거류 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여 구관(區管)을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게 하였다. 국내의 지단조직은 국내 총지단장에 홍제업(洪濟業), 평안북도정우범(鄭禹範), 평안남도안창일(安昌一), 경기도한덕리(韓悳履), 용천군이후관(李厚觀), 철산군안병철(安秉哲), 영변군신태익(申泰翼), 정주군조석균(趙錫均), 태천군백낙기(白樂基), 영유이항로(李恒老), 가산오봉희(吳鳳熙), 수안최일호(崔一浩) 등이었다. 만주지방 조직으로는 장백현 총지단장에 유일우, 집안현 유수림자(楡樹林子)최남표(崔南表), 집안현 외차구(外岔溝)홍승국(洪承國) 등이었다. 이들은 3, 4명씩 결사대를 조직해 평안남북도의 조선총독부 예하 경찰을 습격하고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금하면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확대시켜갔다. 8월 최고 1,500명의 병력을 유지하면서 그 중 700명의 독립군을 하얼빈(哈爾濱) 주둔 백계 러시아 부대에 파견해 군사훈련을 받게 하고, 9월경 노령(露領)으로도 2개 소대를 보냈다. 이들은 시베리아에서 훈련과 무기 구입에 주력하였다. 12월 본부 밑에 4개 중대를 편성해 남만주 제1사단이라 하고, 무송현(撫松縣)에 사단본부를 설치하였다. 1919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 실시에 따라 조병준이 평안북도 독판(督辦)이 되어 공채를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3, 4월 결사대들이 평안도 신의주·의주 등에서 친일세력의 처단에 주력하였다. 또한, 본단의 목적인 남만주와 국내 운동세력의 연계를 통해 독립의 완전한 성취를 도모하고자 전국적으로 독립군 모집(募軍)과 군자금 모금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중에서도 태천(泰川) 지단에서는 유림 김인수(金仁叟) 등의 활동으로 다수 단원을 포섭해, 본단 내지분치기관임시통칙(內地分置機關臨時通則)에 의해 의용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폭약을 구입, 관공서 파괴를 계획하던 중 다수의 단원이 붙잡히기도 하였다. 유일우·김병연(金秉淵)·박기연(朴基淵) 등은 장백현 일대에서 많은 자금을 모금했으며, 안도(安圖)·무송현 등지와 연락하면서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대한독립단은 연호문제로 노년층과 청년층이 대립, 단군기원 또는 융희를 주장하는 기원(紀元)독립단과 대한민국 연호 사용을 주장한 민국(民國)독립단으로 분열되었는데, 백삼규박장호(朴長浩)·전덕원(全德元)·이웅해(李雄海)·김평식(金平植) 등과 같이 기원 독립단 즉 구왕조(舊王朝)에 충성하는 복벽운동(復酸運動)에 주력하는 수구파(守舊派)에 속하였다.

백삼규는 1920년 일본군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있는 우리 청년단을 습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청산구(靑山溝)에 갔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환인현에서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오재식, 『항일순국열사전』(행정신문사, 1959)
  • 『한국독립운동사』3 (국사편찬위원회, 1967)
  • 김후경·신재홍,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독립운동사』5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관련항목
관련 웹사이트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