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룡

한자 方雨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의민단 단장|청산리전투 참전|대한 독립 군단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지 길림성 왕청현 춘화향
활동지 길림성 화룡현
활동지 밀산부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간도의 국민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하던 방우룡은 1919년 천주교인들의 헌금을 기반으로 하여 의민단 창립을 주도하였다. 의민단은 왕청현(王淸縣) 춘화향(春華鄕)에서 천주교인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무장독립단체로서 단장 방우룡, 부단장 김연군(金演君), 참모장 김종헌(金鍾憲), 영장(營長) 허은(許垠), 서무부장 정준수(鄭駿秀), 재무부장 홍림(洪林) 등이 주축이 되었다. 한때는 홍범도(洪範圖)와도 함께 활동한 바 있으나, 그 뒤 분리하여 독자적 행동을 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국내진공이었고, 조직이 강력한 편이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인정하여 군무보고를 하였고, 그 지시를 받았다. 대원은 약 300명이었으며, 소총 약 400정, 권총 약 50정, 수류탄 약 480발을 소유하여 충실한 군비를 갖추었다.

1920년 6월 이후 국민회·북로 군정서·광복단·의군단(義軍團)·신민단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견 안정근(安定根)·왕삼덕(王三德)의 조정으로 연합활동을 폈다. 방우룡은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에 재간북대한의민회(在墾北大韓義民會)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20년 10월에는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방우룡은 그 뒤 노령 자유시에 가서 참변을 겪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1922년 8월 방우룡은 독립군단 통합운동에 가담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혈성단(血誠團)·의군부(義軍府)·광복단(光復團)·신민단(新民團)·대진단(大震團) 등과 합병해 대한 독립 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였다. 이후의 활동과 사망 시기는 전해지는 바 없다.

참고문헌
  • 채근식, 『무장독립운동비사(武裝獨立運動祕史)』(대한민국공보처, 1949)
  •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金正明, 『朝鮮獨立運動』(原書房, 1967)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국,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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