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燦洙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화룡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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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북로군정서 중대장|천수동전투 |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1월 3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8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9월 12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0월 21일 |
| 추모 시기/일시 | 1998년 |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 출생지 | 서울 |
| 거주|이주지 | 중국 만주 |
| 활동지 |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구(吉林省汪淸縣西大波溝) |
| 활동지 | 화룡현(和龍縣) 삼도구(三道溝) 천수동(泉水洞) |
일제 강점기 북로 군정서 소속의 중대장으로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찬수는 1882년 1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찬수는 1920년 8월 북로 군정서에서 대한제국 장교 영입을 위하여 국내에 파견된 이성규(李成奎)를 따라 김규식(金圭植)·홍충희(洪忠喜)·박형식(朴亨植) 등과 함께 북로 군정서에 가담하였다. 이후 1920년 9월 12일, 김사직(金思稷)을 대대장으로 하는 보병 1개 대대 편성 시에 김규식·홍충희·오상세(吳祥世) 등과 함께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1920년 10월 21일에는 화룡현(和龍縣) 삼도구(三道溝) 천수동(泉水洞)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는데 일조하였다.
청산리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독립군은 갑산촌(甲山村)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던 중 적 기병 1개 중대가 갑산촌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천수평에 주둔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이에 사령부에서는 기동 타격으로 적을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 김찬수는 제3중대장으로 참전하였는데, 일본군 기마중대 120명을 격파, 거의 전멸시켰다. 이후 자세한 활동 사항이나 사망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리어, 1998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