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세

한자 吳祥世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신흥무관학교 교관|북로군정서 장교|대한 독립 군단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몰년 시기/일시 1937년
추모 시기/일시 1963년
학교|수학지 유하현 고산자가(孤山子街
활동지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구(吉林省汪淸縣西大波溝)
활동지 길림성 화룡현
활동지 길림성 영안현
활동지 흑룡강성 목릉현
활동지 흑룡강성 밀산
활동지 길림성
활동지 흑룡강성 동녕현 삼분구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 양성과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한 민족 운동가.

활동 사항

오상세신흥 무관 학교를 졸업한 후 1919년 백종열(白鍾烈)·박영희(朴寧熙)·김춘식(金春植)·강화린(姜化麟)·최해(崔海)·이운강(李雲崗) 등과 함께 북로 군정서에 독립군 장교로 임명, 사관양성소의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9월 9일에는 보병 1개 대대가 편성되자 김사직(金思稷) 대대장 지휘아래 김규식·홍충희·김창수 등과 같이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 제4중대장으로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이후 오상세대한 독립 군단(大韓獨立軍團)이 조직되자 부대를 따라 노령으로 갔다. 그러나 자유시 참변을 겪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오상세는 1925년 3월 신민부(新民府)의 제2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신민부에서 목릉현 소추풍(穆陵縣小秋風)에 성동 사관 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설립하자 오상세는 교관으로 부임, 독립군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26년에는 대한 독립 군단 위원 및 신민부 경호대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1932년에 오상세는 길림성 자위군 대대장(吉林省自衛軍隊隊長) 및 반만 항일군(反滿抗日軍) 군정위원 등으로 항일 투쟁을 계속 이어나갔으며, 대한 구국 의용대를 조직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계속하였다. 그러한 활동 가운데 1937년 오상세는 산현(山縣) 지방에서 병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채근식, 『무장독립운동비사(武裝獨立運動祕史)』(대한민국공보처, 1949)
  •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신재홍, 『독립군의 전투』(민문고, 1982)
  • 박환, 『만주 한인 민족 운동사 연구』(일조각, 1991)
  •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역사비평사, 2001)
  • 이현희, 「신흥무관학교 연구」(『동양학』19,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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