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충희

한자 洪忠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북로군정서 대대장 서리 겸 중대장
출생 시기/일시 1878년 12월 29일
수학 시기/일시 1903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34년
몰년 시기/일시 1946년
추모 시기/일시 1977년
출생지 서울 도염동(都染洞)
거주|이주지 북간도
학교|수학지 한성
활동지 한성
활동지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구
활동지 길림성 화룡현
활동지 하얼빈 안평가(安平街)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충희는 1878년 12월 29일 서울 도염동(都染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우봉(禹峰). 1903년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하고 대한제국군(大韓帝國軍) 육군부위(副尉)를 지냈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권동진(權東鎭)을 도와 3.1 독립운동에 참여한 뒤 김규식(金奎植)·김찬수(金燦洙) 등과 함께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같은 해 8월에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구(吉林省 汪清縣 西大波溝)에서 서일(徐一)·현천묵(玄天默)·김좌진(金佐鎭)·계화(桂和)·이장녕(李章寧)·김규식(金奎植)·이범석(李範奭)·조성환(曺成煥)·박성태(朴性泰)·정신(鄭信) 등과 함께 정의단(正義團)을 개편하여 군정부를 편성하였다. 이후에 지속적으로 무장 독립투쟁에 투신하였다.

홍충희는 1920년 10월 청산리(靑山里) 전투에 대대장대리 제2중대장으로 참전 큰 전공을 세웠다. 이후 1934년 김영숙(金永肅)·김서종(金書鍾) 등과 함께 하얼빈 안평가(安平街)에 대종교 선도회(大倧敎善道會)를 설치하여 포교활동을 통하여 한인들이 민족정신을 배양하고 독립정신을 고취할 수 있도록 힘썼다. 1942년 일본 경찰의 대종교 탄압사건으로 대종교 지도자들이 대거 검거되자 피신하여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6년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채근식, 『무장독립운동비사(武裝獨立運動祕史)』(대한민국공보처, 1949)
  • 김승학, 『한국독립사(韓國獨立史)』(독립문화사, 1965) 『독립운동사자료집』14 (국가보훈처, 1991)
  • 『독립운동사자료집』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김후경,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광복출판사, 1983)
  • 신용하, 『한국 민족 독립운동사 연구』(을유문화사, 1985)
  • 이강훈, 『독립운동대사전』(대한민국광복회, 1985)
  • 『대한민국 독립유공 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신재홍, 「북간도에서의 무장항일운동」(『한국사학』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신용하, 「대한(북로)군정서 독립군의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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