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梁道憲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진명학교 교사|대한국민회 동부지방총회장 |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 1918년 8월 | |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10월 30일 |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0년 |
| 출생지 | 함경북도 종성 |
| 거주|이주지 |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진일사(眞一社) 화령평(花嶺坪) 농동(農洞)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무장 투쟁 및 군자금 모금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양도헌은 함북 종성(鍾城) 출신으로 1883년 출생하였다. 1918년 중국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진일사(眞一社) 화령평(花嶺坪) 농동(農洞)으로 이주하였다. 그 지역에서 양도헌은 진명 학교(震明學校)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애국 정신을 고취하였다. 1919년 8월 대한 국민회 동부 지방 총회(東部地方總會)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양도헌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영사관 경찰들에게 가택 수색을 당하고 가족과 함께 구타를 당하는 일을 겪기도 하였다.
양도헌은 1920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총 30정을 구입하여 대한 국민회 총본부에 공급하기도 했으며, 대한 국민회 회장 구춘선(具春先) 등과 함께 한인 대표로 ‘지나관상신보각계제군(支那官商新報各界諸君)에 경고(警告)함’이란 글을 발표하여 일제의 침략과 강압을 폭로하였다. 같은 해 5월 영안현(寧安縣) 일대에서 조권식과 함께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6월에는 나자구(羅子溝) 방면에서 무기를 입수하여 무장 독립 투쟁에 힘을 실었다. 그밖에도 지속적으로 무기 입수 및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10월 양도헌은 군자금 조달을 기획하던 중 일본군 토벌대가 한인촌을 습격하여 한인들을 학살하는 경신 참변(庚申慘變)이 발생하였다. 양도헌은 연길현 장암동(獐巖洞) 부근으로 몸을 피했으나, 같은 달 30일 장암동이 일본군에 의해 토벌당하면서 대한 국민회 간부 최설(崔卨)·이동빈(李東彬) 등과 함께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