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천묵

한자 玄天默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종교인
성별
대표경력 대종교 정교|간북북부총판부 부총판|북로군정서|청산리전투|신민부|한인교육회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3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10월
몰년 시기/일시 1928년
추모 시기/일시 1963년
출생지 함경북도 경성
거주|이주지 중국 만주
활동지 북간도
활동지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구(吉林省汪淸縣西大波溝)
활동지 길림성 화룡현
활동지 북간도 연길·화룡·돈화·액목
활동지 길림성 영안현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교육 활동 및 무장 독립 투쟁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현천묵은 함북 경성(鏡城) 사람으로 대종교인이다. 호는 백취(白醉). 1910년 만주로 망명하여 서일(徐一)을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1년 1월 참교(參敎), 1913년 4월 지교(知敎), 1917년 5월 상교(尙敎), 1927년 1월에는 정교가대형호(正敎加大兄號)를 지내면서 포교 활동 및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2년 동일 학교(東一學校)를 설립하고 교육 활동에 전념하기도 하였다.

1919년 8월에 현천묵서일·김좌진(金佐鎭) 등과 함께 정의단을 군정부로 개편하여 본부를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서대파구(西大波溝)에 두고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군정부가 북로 군정서로 다시 개편되자 부총재직을 맡았다. 1920년에는 청산리 독립 전쟁에 참가하여 큰 전공을 세웠으며 재만 독립군의 재편을 위해 설립된 간북 북부 총판부(墾北北部總辦府)의 부총판으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현천묵은 1925년에 김좌진·김혁(金赫)·나중소(羅仲昭) 등이 북만 영안현(寧安縣)에서 조직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사법(司法) 기관인 검사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 상해 임시 정부의 국무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1926년 10월 10일 재차 국무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이후 길림성 연길현을 중심으로 한인 교육회(韓人敎育會)를 조직하여 독립을 위한 민족 교육에 전념하였다. 현재까지 자세한 사망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 (애국동지원호회, 1956)
  • 『독립운동사자료집』1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 『독립유공자공훈록』4 (국가보훈처, 1987)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 (국가보훈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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