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환

한자 黃德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하얼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신민부 별동대장|친일파 처단
출생 시기/일시 1895년 2월 26일
수학 시기/일시 1913년
활동 시기/일시 1916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25년 3월
활동 시기/일시 1927년 8월 11일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2월 1일
활동 시기/일시 1928년 2월 20일
몰년 시기/일시 1929년 9월 20일
추모 시기/일시 1963년
출생지 함경남도 원산
거주|이주지 일본동경, 중국만주
학교|수학지 일본동경
활동지 부산
활동지 영안현 영안성(寧安縣寧安城)
활동지 영안현 해림, 하얼빈
활동지 하얼빈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하얼빈 지역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황덕환은 189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호는 일초(一樵), 또 다른 이름은 황건(黃鍵)이다. 1913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東京)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 입학하였다. 1916년 10월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황덕환은 1919년 상해 임시 정부로부터 군자금 모금의 지령을 받아 배편을 이용하여 국내로 잠입하다가 부산항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3년 복역한 뒤 1922년 3월 가석방되었다.

출옥한 뒤 황덕환은 1923년 1월 다시 만주로 갔다. 1925년 3월 신민부에 가입하여 김좌진 휘하 별동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27년 8월 신민부의 활동을 방해하고 반역 행위를 하는 중동선(中東線)해림 조선인 민회(海林朝鮮人民會) 회장(會長) 배두산(裵斗山)을 처단하였다. 같은 해 대원들과 함께 하얼빈 조선인 민회를 습격하여 해산시켰다.

황덕환은 이후 군자금 1,500원을 모금하여 무기를 구입, 본부로 보낸 일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8년 2월 20일 대련(大連) 지방 법원으로 압송되었고, 5월 17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여순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복역 중 한인을 같이 노역하며 한인을 모욕하는 일본인 죄수를 살해한 죄목이 더해져 1929년 9월 20일 사형을 당했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85년 11월 영광군에서 우산공원 내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독립운동사』 (애국 동지 원호회, 1956)
  • 오재식, 『항일 순국 열사전』(행정 신문사 출판국, 1959)
  • 김후경·신재홍, 『대한민국 독립운동 공훈사』(한국 민족 운동 연구소, 1971)
  • 『독립운동사』5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7)
  • 『독립유공자공훈록』4권, (국가보훈처, 1987)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 (국가보훈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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