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림

한자 李福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별
대표경력 동북 항일 연군제3군 제1사 정치부 주임
출생 시기/일시 1907년 5월
수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7월
활동 시기/일시 1933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34년 9월
활동 시기/일시 1935년 1월
활동 시기/일시 1936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36년 겨울
몰년 시기/일시 1937년 4월
출생지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운리면
거주|이주지 길림성 화룡현 명암촌(明岩村)
학교|수학지 동흥학교
정의

일제 강점기 중국주하현 일대에서 동북 항일 연군으로 활동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복림은 1917년 부모를 따라 길림성 화룡현 명암촌(明岩村)으로 이주한 후, 1920년 화룡의 한약방에 일하며 동흥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이복림은 재학중 진보적 서적을 접하게 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이복림은 1926년 동만 청년 총동맹에 가입, 혁명 활동에 직접 투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7년 봄, 이복림은 일본 경찰을 살해하고 영안현 동경성으로 피신, 조선 공산당 화요파에 가입하였고, 1929년 북만 청년 동맹 사업을 전개하였다. 1929~1930년 영안·아성·해림 등지에서 농민 운동을 지도하였는데, 당시 김동범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이복림은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1931년 10월 하얼빈에서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순시원, 1932년 7월 중국 공산당 주하 중심 현위 조직부장, 1933년 10월 주하 반일 유격대 당 지부 서기, 1934년 9월 동북 반일 유격대 합동 지대 당위 서기, 1935년 1월 동북 인민 혁명군 제3군 처장, 1936년 8월 동북 항일 연군 제3군 제1사 정치부 주임 및 합동 유격대 사령원, 1936년 겨울 동북 항일 연군 제3·제6·제8·제9군 의동 판사처 주임 등을 두루 거치면서 동북 항일 연군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복림은 1937년 4월 17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성 위원회를 도우러 가던 중 통화현 이도하자 북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 중 전사하였다.

참고문헌
  • 상지시 조선 민족사 편집 위원회, 『상지시 조선 민족사』민족 출판사, 2009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 운동사(1920~1945) : 민족주의 운동 및 사회주의운동 계열의 대립과 연대를 중심으로』(아세아 문화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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