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신

한자 金相臣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의병
성별
대표경력 이석용 의진의 도로부장|일본 밀정 살해|군자금 모금
출생 시기/일시 1887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9월 6일
활동 시기/일시 1911년
몰년 시기/일시 1949년
추모 시기/일시 1968년
추모 시기/일시 1977년
추모 시기/일시 1990년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
활동지 전주, 남원
활동지 전라 북도, 전라남도 일대
정의

대한 제국기에 전라북도도장수, 임실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이석용 의진 도로부장(道路部長)으로 활약하였으며, 1908년 9월 6일 일본 헌병의 밀정인 김실일을 처단하였다.

가계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왕방리(旺訪里) 원증(元增)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대한 제국기 말에 활동한 호남 의병으로 이명으로는 성률(成慄)·성진(成律)을 사용하였다. 1907년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盟所)에 종사(從事)로 활동하다가, 그해 9월 전라북도 진안군 석전리(石田里)에서 독자적으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여 창의 동맹(倡義同盟)의 도로 부장(道路部長)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6일 일본 헌병의 밀정 역할을 한 김실일(金實日)을 처단하였다.

이석용 의진이 1909년 9월 임실 전투 패전 후 해산하였지만, 이후에도 같이 활동하였다. 1911년 11월 22일 밤 이석용·김필수(金必洙)·박보국(朴甫局)·정남쇠(丁南釗)·홍윤무(洪允武)·박동환(朴東煥)·한일성(韓日成) 등과 함께 전라북도 장수군 진전면(眞田面) 월파리(月坡里)의 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군자금으로 징발하였다. 이후에도 1912년 말까지 김필수 등과 함께 군자금 조달 활동을 계속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3년 2월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全州支廳)에서 ‘강도상인(强盜傷人)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大韓民國 獨立 有功者 功勳錄』1 (국가 보훈처,1986)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91)
  • 한국 독립운동사 정보 시스템, (http://search.i815.or.kr/Main/Main.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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