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基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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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삼원포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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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대한독립단 단원|통의부 대원|의군부 대원 |
| 출생 시기/일시 | 미상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2월 |
| 몰년 시기/일시 | 1924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 출생지 | 평북 의주 |
| 활동지 | 요령성(遼寧省) 환인(桓仁) |
| 활동지 | 평안북도 의주 청성진(淸城鎭) |
| 활동지 | 평안북도 의주, 용천 |
| 활동지 | 팔조구(八條溝) |
일제 강점기 만주 요령성과 평안북도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기원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생년월일은 알 수 없다. 김기원은 1920년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 독립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및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한 독립단은 1919년 4월 양서 지방에서 의병 활동하다 만주로 망명한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圭)·전덕원(全德元) 등이 서간도의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한 독립군 단체이다.
이 무렵 조선 총독부는 만주 지역에 보민회(保民會)·민회(民會) 등의 친일 단체를 조직해,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고 독립군의 내사(內査) 및 토벌 등을 지시하였다. 이에 대한 독립단은 이들 친일 단체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1920년 김기원은 대한 독립단의 단원으로서 요동성(遼寧省) 환인(桓仁) 등지에서 친일 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해 친일파 제거에 주력하였다.
1922년 8월 대한 독립단이 한족회·광한단 등과 회합하여 대한 통군부로 발전적 해체되고, 대한 통군부가 대한 통의부로 확대·개편됨 되자, 김기원은 대한 통의부의 대원으로 1923년 평안북도 의주의 청성진(淸城鎭) 일본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1924년 2월, 통의부 5중대장 김석하(金錫下)의 명으로 홍학순(洪學淳) 등과 함께 평안북도 의주와 용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정체(政體) 이념과 권력 분배 등을 둘러싼 통의부 내부의 갈등으로 분리된 의군부에서 활동하다가 1924년경 팔조구(八條溝)에서 통의부 대원에게 피살되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