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鮮 獨立 新聞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연속 간행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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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인 | 김영학(金永學) |
| 창간 시기/일시 | 1919년 3월 8일 |
| 폐간|종간 시기/일시 | 1919년 4월 |
1919년 3월 조선 국민 의사회(朝鮮國民議事會)가 북간도(北間島) 화룡현(和龍縣)에서 발간한 신문.
김영학은 함경북도 명천 출신으로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한 뒤, 연변교민회(延邊僑民會) 간부, 1912년 간민회(墾民會) 의사원(議事員), 1914년 국민회(國民會) 조직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연길 국자가(局子街)에서 구춘선(具春先)·박동원(朴東轅) 등 33명과 함께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독립선언서 발표를 계획하는 등 그해 3월 13일 용정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 삼도하자(三道河子)에서 구춘선(具春先)·장한봉(張漢鳳) 등과 함께 3월 28일 교민 1,000명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확산하는데 힘썼다. 이때 김영학은 연길현 국자가에 설립한 조선 국민 의사회 회장으로서 삼도구(三道溝)와 연길 태랍자(太拉子) 등지에서 한인 결사대를 모집하는가 하면, 『조선 독립 신문(朝鮮獨立新聞)』을 발간하고 이를 통해 만주 지역 한인들의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다.
1919년 4월 초 김영학이 유찬희(柳讚熙)·박경철(朴敬喆) 등과 함께 연해주로 떠나면서 조선 국민 의사회는 해산되었고, 신문 발행도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