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자치회

한자 韓民 自治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한인 자치 단체
설립자 박무림|김약연
설립 시기/일시 1909년 10월
최초 설립지 간도성 화룡현 지신사 명동촌
현 소재지 길림성 용정시 지신진 명동촌
정의

1909년 10월 북간도 지역에 이주한 한인들의 자치를 도모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

개설

한민 자치회서전 서숙명동학교를 통해 교육 사업에 힘쓰던 박무림(朴茂林)·김약연(金躍淵) 등을 중심으로 30여 명에 의해 결성되었다. 특히 연길 도윤(道尹) 도빈(陶彬)의 통역관 이동춘의 협력을 얻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민 자치회는 간도 협약 이후 간도 한인들을 이용하려던 일제에 맞서 민족 자치를 주장하였으나, 일본의 항의를 받은 청나라에 의해 해산되고 말았다.

설립 목적

한민 자치회는 간도 협약 이후 북간도 한인들의 자치를 도모하고자 만든 조직이다.

변천

한민 자치회는 간도 협약이 체결된 이후 1909년 10월 박무림·김약연을 비롯한 30여 명에 의해 결성되었다. 한민 자치회는 민족 자치를 주장하며 연길부 도윤에 인가신청을 제출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이는 일제가 청나라 정부에 항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역시 한인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연길 부윤 도빈은 박무림 등 30여 명이 청나라에 귀화 입적하고 청나라 통치에 귀속된다면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한민 자치회는 청나라에 의해 해산되고 말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한민 자치회는 간도 협약 이후 일제가 주장하는 치외 법권에 대하여 반대하고 일제의 수하 단체인 일진회(一進會)의 죄상을 폭로하려 하였다. 한편으로 한인들은 언어·풍속·성격이 중국인과 다르다며 간도 내에서는 민족 자치 실시를 주장하며 1910년 1월 연길부청에 인가 신청을 제기하였다.

의의와 평가

한민 자치회는 민족 자치를 주장하며 북간도 지역 한인들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하였으며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였다. 한민 자치회는 청나라 정부에 의해 해산되었으나 중심 인물이었던 김약연 등은 후에 간민회(墾民會)에 참여하여 간도 이주 한인들의 자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갔다.

참고문헌
  •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편집위원회, 편 『개척』,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1, 민족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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