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부대

한자 731 部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일본군 부대
설립자 일본 관동군
설립 시기/일시 1940년 7월
해체 시기/일시 1945년 8월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하얼빈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북만주 하얼빈 교외에서 인체 실험과 세균전을 위한 생물학 병기 실험을 자행했던 일본 관동군 부대.

개설

731 부대의 공식 명칭은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關東軍防疫給水部本部)이다. 1936년에 설립되어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 급수부', '동향부대(東郷部隊)'로 불리다가 향후 '731 부대'로 개명하였다. 이 부대는 명치에서 보듯이 일본군의 방역과 정수 공급 담당이 본래 목적이었으나, 1940년경 이시이 시로[石井四郎]의 지휘 하에 세균전에 사용되는 생체 병기의 연구나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인체 실험을 자행하였다. 이들에 의한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를 포함하여 3,000명에서 12,000명으로 추산된다.

설립 목적

방역 급수부의 설치 목적은 전염병에 대한 방역 대책을 세우고 부대에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보급하는 것이었지만, 이시이 지휘 하의 731 부대는 방역 외에도 세균전에 사용할 각종 생물학 병기의 개발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변천

1932년 8월 이시이 시로는 일본 육군 병기본부 내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육군 군의학교(軍醫學校) 방역부(防疫部) 아래에 이시이 시로 등 군의관 5명이 소속된 방역연구실(防疫研究室)이 개설되었다. 이 무렵 일본군 세력 하의 만주에 연구 시설이 건설되기 시작하여 파견기관으로 '관동군 방역반(關東軍防疫班)‘이 조직되었다. 다음 해인 1933년 가을부터 하얼빈에서 동남쪽으로 70㎞ 떨어진 배음하(背陰河)에서 연구가 개시되었다. 이때 관동군 방역반은 이시이 시로의 가명인 동향 하지메(東郷ハジメ)를 따서 ‘동향 부대(東郷部隊)’라고 통칭되었다.

1936년 관동군 방역부의 신설이 제안되어 그해 8월 통칭 ‘가무 부대(加茂部隊)’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족하였다. 1936년 말 부대 규모는 군인 65명, 군속 105명이었다. 늘어난 규모에 대응하기 위해 건물을 신축하여 1940년 완공되었다.

1940년 7월 관동군 방역부는 관동군 방역 급수부[통칭 만주 제659 부대]로 개편되었고, 그 본부로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만주 제731 부대]가 설립되었다. 이 시점에서 관동군 방역 급수부의 전체 규모는 군인 1,235명에 군속 2,005명에 달했다.

1945년 소련군이 만주로 진격해오자, 731 부대를 비롯한 관동군 방역 급수부는 시설을 파괴하고 증거를 은닉한 뒤, 대부분의 관계자가 8월 15일 이전에 도주하였다. 간부급은 전부 도주하였으나, 하부 구성원 중 일부는 중국에서 복역하거나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하바로프스크 재판에서 전쟁 범죄자로 기소되기도 하였다.

구성

731 부대 아래에는 직할대와 헌병대 외에 세균 연구를 담당하는 제1부, 시설 연구를 담당하는 제2부, 방역 급수를 담당하는 제3부, 세균 제조를 담당하는 제4부, 교육부, 자재부, 진료부 등 총 7개 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각 부 아래의 각 과마다 별개의 질병이나 실험을 담당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731 부대는 방역 활동이 표면상의 설립 목적이었으며, 부분적으로 실제 방역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731 부대는 세균전에 사용될 생물학 병기를 연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병원균을 주사하여 경과를 지켜보는 등 세균 실험이나 생체 반응 실험, 무기 실험 등을 행하였다. 731 부대는 세균전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하여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중국인 거주지역에 살포하는 등 전염병 구역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실험을 강행하기도 하였다.

731 부대의 인체 실험으로 최대 1만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그 다음으로 러시아인이 거의 30%를 차지하였으며, 기타 동남아시아나 태평양 군도의 주민, 한국을 포함한 당시 일본 식민지의 주민, 일부 연합군 전쟁포로도 희생자가 되었다.

현황

종전 후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731 부대의 간부들은 모두 전범 재판을 면하였으며, 살아남은 이들끼리 전우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후 일부 고위 간부들은 일본 의료계의 중진이 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은 엄연한 전쟁 범죄 행위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참고문헌
  •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 민족 백년 사화』,(민족 출판사, 2007)
  • Sheldon H. Harris 著, 近藤 昭二 ,『死の工場―隠蔽された731部隊』(柏書房, 1999)
  • 「日서 731부대 세균전 만행 극비문서 발견」(연합뉴스 2011년 10월 16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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