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朝鮮 銀行 間島 支店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금융 기관 |
|---|---|
| 설립자 | 조선 은행 |
| 설립 시기/일시 | 1917년 3월 |
| 최초 설립지 | 간도 용정촌 |
| 현 소재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1917년 3월 간도 용정촌에 개설되었던 조선 은행 출장소.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1917년 3월 설치되었다. 용정 출장소는 기존에 간도 우체국이 담당하던 환 업무를 인수하고, 일본 상인들에게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등 상행위의 편의성을 제고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일본이 간도의 상권을 장악하고, 경제적으로 침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발권 은행으로 엔 블록화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동양 척식 주식 회사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출금을 통한 토지 수탈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자금 조달 문제와 영업 범위의 협소화를 극복하고 간도 지역의 화폐를 통일하여 만주에 독점적, 배타적인 특권을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식민지 경제 지배를 원활히 하고자 설립되었다.
조선 은행은 1909년 안동현에 출장소를 개설하여 남만주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뒤 1917년 3월 간도 용정 출장소가 개설되어 한인 사회에 대한 경제적 통제를 본격화하였다.
1920년 조선 은행의 지점 및 출장소는 용정을 비롯하여 봉천·대련·장춘·개원·하얼빈·전가전·영구·길림 등 18개 곳에 설치되어 만주 지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였다. 이주 한인은 이에 대항하여 상무계(商務契) 등을 조직하여 자금 축적을 꾀하였으나 자금의 영세성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중국계 은행들 역시 이에 대항하고자 하였으나 투자 실패로 인한 경영 부실화로 활동이 위축되었다.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보통 업무로는 예금·대출·환·금괴 매매·금은 출납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신용대출·상업 대출·부동산 대출을 시행하였다. 또한 간도 지역에서 그동안 간도 우체국이 전담하던 해당 지역에서의 환 업무를 담당하면서 무역상의 환전 장애를 해결하고 일본 상인들에게 신용대출을 제공하였으며, 나아가 발권 은행으로서 엔 블록화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간도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던 동양 척식 주식 회사와 함께 한인들의 원성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또한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대출하면서 획득한 토지 매각 대금의 관리를 용정 출장소에서 위탁 관리하기도 하였다. 이는 일제의 간도 지역 토지 수탈에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용정 출장소가 영역의 구분을 가리지 않고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수탈 당하는 토지의 대부분이 재만 한인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상황에서 용정 출장소는 간도 지역에서 일제의 상권 확장과 재만 한인에 대한 토지 수탈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영업 활동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은행 용정 출장소는 일본의 간도 상권 장악과 경제적 침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