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七星 祭祀 |
|---|---|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 유형 | 의례/제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가신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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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례시기/일시 | 정월 |
| 신당/신체 | 바위|밧칠성|북두칠성 |
북두칠성을 신앙 대상으로 삼아 복을 비는 제사.
칠성 제사, 혹은 칠성 고사는 가신(家神) 신앙의 하나로 집안의 여성들에 의해 많이 연행되며, 그 목적은 가족들의 무사 평안과 소원 성취, 자녀들의 무사와 출세 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칠성 신앙에 관한 명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기원이나 기능을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별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임을 상기할 때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신앙의 형태가 시간이 흐르며 체계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도교의 전래와 관련이 깊다. 『성종실록(成宗實錄)』 권 제70,1476년(성종 7) 8월 24일의 내용에는 고려를 거쳐 조선의 국조에 이르기까지 북쪽에 떠 있는 별, 즉 태일성(太一星)에 대하여 국가적 제사를 지내 왔음이 기록되어 있다. 태일(太一)은 도가에서 비롯된 우주 최고의 신명(神明)으로 제사의 목적이 기우(祈雨)를 위한 것이어서 당시 칠성신이 날씨를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겨졌음을 가늠할 수 있다.
그 후로도 이규보(李奎報)의 저서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노무편(老巫篇)」에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신앙의 대상으로 둔 예가 등장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 칠성은 불교와 민간 신앙에 수용되면서 그 성격이 명확해지고 대중의 갈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격을 부여받았다. 특히 재운(財運)과 수명, 다산을 관장하는 신으로 칠성각(七星閣)에 모셔진 불교의 신격이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가신(家神)의 위치에 올랐다.
북두칠성에 대한 제사는 흔히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연행되었다. 제사의 시기는 삶을 영위하면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소원이나 괴로움, 변고가 있을 때이며 그 제사의 연행자는 집안 여인들인 경우가 많다.
제사를 올릴 때는 뒤뜰에 자리를 깔고 상을 놓은 후 그 위에 정화수 한 그릇을 올려 제수로 삼는다. 간혹 일곱 그릇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제사의 연행자는 꿇어 앉아 비손하며 소원을 고하고 절한다.
과거 한인 거주 마을에서는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경우 비정기적인 칠성 제사를 지냈고, 마을 단위로도 칠성에 대한 공동 의례를 연행하기도 하였다. 용정시(龍井市) 지신향(智新鄕) 명동촌(明東村)에는 마을 어귀에 부군 칠성를 모신 바위가 있어 매해 의례를 드렸고, 용정시 지신향 장재촌(長財村)에서도 매해 정월 첫 7일에 칠성제를 연행하였다 한다. 그러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