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규

한자 金鼎奎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대한 의군부 지방 경위대
출생 시기/일시 1881년 8월 3일
몰년 시기/일시 1953년 8월 29일
출생지 함북 경성
활동지 만주, 연해주
정의

일제 강점기 간도와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 투쟁을 하면서 이를 기록한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김정규는 가정 형편에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15세까지 공부에 전념하였다. 이는 부친의 높은 교육열에 기인한 것인데 그의 학문적 관심은 매우 다양했다. 그는 성리학 이외에도 천문·지리·병학·의학 등을 접하였다. 이는 향후 그가 연해주에 의병 전쟁과 독립 전쟁을 전개하는 밑거름이었다.

가계

김정규는 함경북도 경성군 명간사 거문동에서 부친 김병국(金秉國)과 모친 여주 박씨 사이에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용연(龍淵) 또는 월산(月山), 자는 형구(亨九)로 본관은 전주이다.

활동 사항

김정규는 1908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이남기(李南基)·서상욱(徐相郁)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캬 관북 의진(關北義陣)을 결성했다. 그는 참모장에 선임되어 연해주에서 국내로 진공한 강동 의병 부대(江東義兵部隊)의 잔류 부대인 장석회(張錫會) 중대와 합진(合陣)하여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본군 탄압으로 국내에서의 활동이 여의치 않자 1909년 간도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김정규는 의병 세력을 규합하여 간도 지역 의진 결성에 힘을 쏟았다.

연해주로 건너간 김정규는 1910년 6월 그곳에서 결성된 십삼도 의군(十三道義軍)에 참여하여 장의군종사(壯義軍從事)로 활약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의 침략에 경술 국치를 당한 후,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성명회(聲明會)가 그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선언문을 채백택자 이에 서명하였다. 한편, 1920년 8월 간도에서 김정규는 대한 의군부(大韓義軍府) 지방 정위대(地方正衛隊)를 편성, 연해주의 의군부 본대와 연계하여 대일 무력 항쟁을 벌였다.

저술 및 작품

김정규는 1910년대 당시 간도 지역 한인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야사(野史)』 17권을 저술하였다. 이는 자신이 체험한 생활을 기록한 부분으로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소중한 자료이다.

상훈과 추모

김정규는 정부로부터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대한 민국 독립 유공자 공훈록』 11(1994)
  • 윤병석, 「용연 김정규의 생애와 야사」(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 5, 1991)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용연 김정규 일기』(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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