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崔明順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1930년 5월 30일 항일 무장 봉기 ‘간도 5·30봉기’에 가담 |
| 출생 시기/일시 | 190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5월 30일 |
|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일제 강점기 간도 일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1930년 5월 30일 북간도 지역에서 발생한 항일 무장 봉기인 ‘간도 5·30 봉기’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최명순은 1906년 함경북도 명천(明川)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간도로 이주하였고, 1930년 5월 30일, 간도에서 발생한 항일 무장 봉기인 ‘간도 5·30 봉기’에 가담하였다.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은 1928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조선 공산당 재조직에 관한 결정서인 이른바 ‘「12월 테제」’에 의해 해체되면서,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에 통합되었다. 이후 이들의 대중 투쟁 노선은 급격히 좌경화 되었다.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연변당부(延邊黨部)는 일제와 군벌 세력을 몰아내고자,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을 총동원하고자 ‘간도 5·30 봉기’를 일으켰다.
‘간도 5·30 봉기’는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연변당부(延邊黨部)와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이 합류하여 그 지도부를 형성하고, 다수의 한인(韓人)이 동참하였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조선 혁명 원조’ 등을 외쳤으며, 용정(龍井)·두도구(頭道溝)·이도구(二道溝) 등에서 동양 척식 주식 회사·철도를 폭탄으로 파괴하고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는 등 격렬히 저항하였다. 최명순은 이 사건으로 김근(金槿)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3년 12월 징역 7년 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