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립

한자 崔繼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간도청년회|철혈광복단|15만원 탈취 사건 주도|대한의용군사회|볼로차예프전투|적기단 단장|그리스챤 콜호스 회장
출생 시기/일시 1897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37년
몰년 시기/일시 1973년
출생지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현 연길시 소관향 민흥촌)
거주|이주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거주|이주지 중앙아시아
학교|수학지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
활동지 길림성 용정
활동지 길림성 용정
활동지 길림성 화룡현 동량리
활동지 영안현 영고탑
활동지 연해주 추풍 그라데고보
활동지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묘소 우즈베키스탄침켄트 시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계립은 1919년 중국간도에서 항일 운동 단체인 철혈 광복단과 간도 청년회를 조직하였고, 북로군정서에 흡수된 후 현금 수송차를 습격하기도 했다. 1925년 이후 러시아에서도 항일투쟁을 벌였다.

가계

최계립의 본명은 최봉설. 호는 이붕(以鵬), 별명은 계립(溪立), 익룡, 일륜이다.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현 연길시 소관향 민흥촌] 출생하였다.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에 세워진 최초의 민족학교 창동 학교를 다녔고, 1916년에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의 애국 지사 김하규(金河奎)의 딸인 김신희(金信姬)와 결혼하였다.

활동 사항

최계립은 1919년 3·1 운동 이전 이동휘(李東輝)가 파리에 대표를 파견하고자 할 때 모금 위원으로 활약하였고, 그해 3월 13일에 용정(龍井)의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어 최계립은 1919년에 조직된 대한 국민회와 그 외곽 단체인 간도 청년회에 참여했으며, 철혈 광복단에서도 활동하였다.

1920년 1월 최계립[봉설]은 윤준희(尹俊熙)·한상호(韓相浩)·임국정(林國楨)·박웅세(朴雄世)·김준(金俊) 등과 함께 일제의 조선 은행 회령 지점에서 같은 은행 용정 출장소에 보내는 자금을 탈취하기로 결의하고 회령 지점원인 전홍섭(全洪燮)을 포섭하여 송금 일자와 노선을 파악하였다.

1920년 1월 4일 최봉설한상호·임국정과 한 조가 되었고, 윤준희·김준·박웅세가 같은 조가 되었다. 이들은 무기를 휴대하고 북간도 용정에서 약 10리 떨어진 동량(東良) 입구에 매복하였다. 마침 현금 수송 대열을 만난 윤준희 조는 권총 10여 발을 발사하여 일본 경찰을 사살하고 현금 15만 원을 탈취하였다.

최봉설은 탈취한 돈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도착하여, 독립 전쟁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윤준희·임국정·한상호 등은 1월 31일에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1921년 8월에 사형을 당하였다. 최봉설은 부상을 입은 채로 러시아연해주로 탈출하여 최계립이라 이름을 바꾸고 사회주의 활동에 가담하였다.

최계립은 연해주 이만(Iman, 달네레첸스크)에 있는 대한 의용군사회의 사관 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후 고려 의용군 소대장과 중대장을 역임하면서 백군과의 전투에서 공로를 세웠다. 특히 1922년 2월에 시작된 볼로차예프 전투에서 임표(任彪)와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최계립은 1923년 2월 만주 영안현 영고탑에서 적기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에 적기단이 해체되자 러시아로 돌아가 연해주 추풍지역에 있는 그라데고보에서 안드레이예브카 콜호즈 회장으로 일하였다.

이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최계립 또한 1937년 중앙아시아우즈베크공화국의 호레즌 갈대밭으로 이주 당하였다. 그 후 최계립은 그리스챤 지역의 콜호즈 회장, 카자흐스탄크질오르다 콜호즈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우즈베크의 침켄트시에서 1976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59년 정월 "간도 15만원 사건에 대한 40주년을 맞으면서"라는 모두 40면으로 구성된 회고기를 작성하였다. 이 글은 15만원 사건의 전모에 대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철혈 광복단의 조직과 활동, 15만원 사건 후의 향후 계획, 일제에 의한 동지들의 체포 등에 대하여 소상히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립운동 단체들의 국내 진공 작전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자료의 의미는 사건을 주도한 담당자의 체험 수기라는 것에 그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 이 수기는 일제하 만주, 러시아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의 전체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된다.

상훈과 추모

1990년 정부는 최계립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金正明, 『朝鮮 獨立 運動』2(東京 原書房, 1967)
  • 金正柱,『朝鮮 統治 史料』8 (東京 韓國 史料 硏究所, 1971)
  • 獨立有功者功勳錄 編纂委員會,『독립 유공자 공훈록(獨立 有功者 功勳錄)』9 (국가 보훈처, 1991)
  • 국가보훈처, 『독립군(獨立軍)의 수기(手記)』(국가 보훈처, 1995)
  • 국가보훈처, 『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 褒賞者』1949-1997 (국가 보훈처, 1997)
  • 박환, 『만주 지역 한인 민족 운동의 재발견』(국학 자료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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