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수

한자 柳京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정치가
성별
대표경력 동북 항일 연군|조선 인민군|최고 인민 회의 대의원
출생 시기/일시 1915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33년~1934년
활동 시기/일시 1936년
활동 시기/일시 1937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활동 시기/일시 1942년
활동 시기/일시 1948년 2월
활동 시기/일시 1949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50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몰년 시기/일시 1958년 11월 9일
추모 시기/일시 1949년 2월
출생지 함경남도 신흥군
활동지 남만주
활동지 길림성 통화현 태평구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활동지 함경남도 무산
활동지 남만주
활동지 소련하바로프스크
활동지 평양
활동지 평양
활동지 평양
정의

일제 강점기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정치가.

개설

유경수는 1931년 한인 농민들과 반일적인 중국인들이 주도한 춘황 투쟁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중국인 지주와 군벌들을 상대로 소작료 인하, 생존권과 자치권의 확보를 요구하였다. 이후 그는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에 참여하였고, 1936년에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8년 동북 항일 연군(東北抗日聯軍) 제1로군 제1영 제1련 제1배장으로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에는 동북 항일 연군 교도려[敎導旅, 소련 붉은 군대 제 88 특별 저격 여단]에서 소련군의 정찰 대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48년 10월 인민군 제4연대(회령) 연대장에 임명되었고, 6·25전쟁 당시에는 사단장을 맡았다. 1951년 1월에는 제3 군단장, 1957년 2월 인민군 제2 집단군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8월 최고 인민 회의 제2기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58년 11월에는 제1 집단군 사령관을 역임하였다.

가계

유경수는 1915년 함경남도 신흥군의 한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유삼손(柳三孫)이다.

활동 사항

유경수는 소학교를 졸업한 후, 1931년 남만주에서 일어난 춘황 투쟁(春荒鬪爭)에 참가하였다. 1932년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에 참여하여 태평구(太平溝) 돌문안지부 책임 비서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길림성 연길현(延吉縣) 항일 유격대에 입대하여 기관총 사수로 활동하였다.

1933년 봄부터 1934년까지 두 차례 민생단원(民生團員) 혐의를 받고 고초를 당하였다. 민생단은 1932년 2월 일제가 한인과 중국인이 연합하여 항일 세력을 결성하자 이를 화해시키고자 한인들만으로 조직한 어용단체였다. 1934년 6월 다시 항일 무장 투쟁에 참가하였고, 1936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에는 무산 지구 국내 진공 작전, 간삼봉(間三奉) 전투 등에 참가하였다.

1938년 동북 항일 연군(東北抗日聯軍) 제1로군 제1영 제1련 제1배장으로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였다. 1940년에는 소련하바로프스크 지역으로 넘어갔고, 1942년에는 동북 항일 연군 교도려[敎導旅, 소련 붉은 군대 제 88 특별 저격 여단]에서 소련군의 정찰 대원을 지냈다.

해방 후 38선 이북으로 귀환하였다. 이 때 그는 공산당 조직을 만들기 위해 지방으로 파견되었다. 1948년 2월 조선 인민군 창군 당시 제2 보병 사단의 연대장을 맡았고, 1949년 2월 조선 인민군 창군 당시 제2 보병 사단의 연대장을 맡았고, 1949년 2월 조선 인민군 창군 1주년을 맞이하여 국기 훈장(國旗勳章) 2급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1949년 5월에는 민족보위성 직할 제105 전차 여단장을 맡아 인민군의 탱크 부대를 총지휘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 1950년 8월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6·25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사단장, 1951년 1월에는 제3 군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55년 7월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네덜란드 해방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1956년 4월에는 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57년 2월 인민군 제2 집단군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8월 최고 인민 회의 제2기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58년 11월 제1 집단군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해 11월 9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49년 2월 조선 인민군 창군 1주년을 맞이하여 국기 훈장(國旗勳章) 2급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 和田春樹 저·이종석 역, 『김일성과 만주 항일 전쟁』(창작과 비평사, 1992)
  • 이종석, 『조선 노동당 연구』(역사 비평사, 1995)
  • 와다 하루끼 저·서동만 역, 『조선 전쟁』(창작과 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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