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사

한자 大覺寺
분야 역사/근현대|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창건자 백용성
건립 시기/일시 1927년 3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7년 9월 11일
최초 건립지 서울 봉익동
현 소재지 만주 용정
정의

1927년 3월 백용성이 불교 혁신 운동을 목적으로 길림성 용정(龍井)에 세운 대각교(大覺敎)의 포교당.

개설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한용운과 함께 참여하였던 백용성은 출옥 이후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들어 저술사업에 몰두하였다. 1925년에는 서울대각사에 대각교(大覺敎)를 창립하여 새로운 불교 운동과 국민 계몽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만주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화과원(華果院)을 경영하는 한편, 그곳에 대각교당(大覺敎堂)을 건립하고 선사상을 포교하는 등 선농 일치 운동(禪農一致運動)을 전개하였다. 백용성의 대각교 운동은 인식의 전환을 통해 개개인의 운명과 시대를 새롭게 자각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백용성은 보다 진취적이고 불교의 정신을 새롭게 구현하기 위해 1911년 서울 봉익동에 이어 1927년 3월 용정에 대각사를 건립하였다.

활동 사항

1927년 9월 11일 대각사에서 봉불식이 거행되었다. 백용성은 토지를 매입하여 신도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과수원을 운영하였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대각사 교인 수는 3백여 명이었다.

참고문헌
  • 村山智順, 『朝鮮の類似宗敎』( 國書刊行會, 1937)
  • 현기환, 『한국유이민사』(어문각, 1967)
  •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 『연변문사자료』8(연변정협문사자료위원회, 1997)
  • 유병호, 『종교사』( 민족출판사, 2006)
  • 차차석, 「일제하 간도 지역의 한인사회와 불교」(『간도와 한인 종교』,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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