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협성 강습소

한자 間島 協成 講習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교육 기관
설립자 천도교 용정 교구, 연길 교구, 화룡 교구
개교 시기/일시 1920년 11월
최초 설립지 간도 용정 천도교구
정의

1920년 11월 천도교 용정 교구·연길 교구·화룡 교구 등이 연합하여 청소년에게 천도교 교리와 근대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설립한 강습소.

교육 목표(교훈 포함)

1910년 이래 간도 지역에 세워진 교육 기관은 사실상 항일 투쟁가를 양성하는 독립운동 요람지였다. 간도 협성 강습소의 “단결은 종교로, 실력은 교육으로”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설립 취지가 “우리의 의무를 다하도록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천도(天道)를 계발하려면, 교리를 선전하려면, 창생(蒼生)을 널리 구제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할 일은 청년 교육이다.”였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천도교 의무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천도교식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즉 간도 협성 강습소는 천도교인 자제에 대한 교리 교육과 더불어 민족 의식 고취에 중점을 두었다.

변천

용정 교구 등 3개소 천도교구 임원진은 협성 강습소와 별도로 중등 교육 기관 설립에 박차를 가하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학생들은 만세 운동을 주도하는 새로운 계층으로 부각되었다. 천도교인 박찬순·최익룡·최명호·김석종·남영종·김홍선·이주화 등은 의연금을 모집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21년 3월 동흥 학교를 설립하고 그해 4월 15일 드디어 개교할 수 있었다. 설립 목적은 천도교 해외 발전을 촉진함과 동시에 천도교의 전체적인 발전 도모, 제2국민의 전체적 교육을 위한 동포의 전체적 자각과 단결의 도모였다. 이는 사회적 공기로서 역할에 충실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교육 활동

간도 협성 강습소는 천도교리에 입각한 청소년 교육 보급에 노력을 거듭하였다. 근대 교육 시행은 시대 변화를 인지하는 동시에 현실 인식을 심화시키는 등 항일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

현황

설립 당시 소장은 박찬순, 소감은 최명호, 강사는 최익룡이었다, 재학생 수는 4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높은 향학열을 보여주었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 『조선일보』.
  • 동양척식주식회사, 『間島事情』(1918)
  • 박재하, 「천도교 간도 협성종학강습소기」( 『천도교회월보』 118, 1920)
  • 박주신, 『간도한인의 민족교육운동사』(아세아문화사, 2000)
  • 이훈구, 『만주와 조선인』(숭실전문학교 경제학연구소, 1932)
  • 성주현, 「일제하 만주지역 천도교인의 민족운동」(『동학연구』 16, 한국동학학회, 2004)
  • 성주현, 「간도 지역 천도교와 독립운동」(『간도와 한인종교』,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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