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間島 孔敎會 |
|---|---|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유교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유교계 종교단체 |
|---|---|
| 설립자 | 문술동|황봉립|이사성|강순희|김승익 등 |
| 설립 시기/일시 | 1912년 11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3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3년 11월 29일 |
| 최초 설립지 | 화룡현 광개향 문암동 |
1912년 11월 재만 한인들이 길림성 화룡현에 세운 유교계 종교 단체.
1899년 연변(延邊) 지역의 한인(韓人) 유생 김상호, 최병순 등은 친일 유생 이희덕과 결탁하여 공묘(孔廟)를 세웠다. 이에 불만을 품은 문술동, 황봉립, 이사성, 강순희, 김승익 등 1백여 명의 반일 유생들이 화룡현(和龍縣) 광개향(光開鄕) 문암동(文岩洞)에서 집회를 열고 간도 공교회(間島孔敎會)를 설립하였다.
간도 공교회(間島孔敎會)는 친일 유림에 대항하여 반일 유생들이 민족정신과 독립 의식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원세개(袁世凱)가 봉건 제도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 공교(孔敎)를 국교로 정하자, 간도 공교회는 연변 공교회와 함께 이를 적극 호응하는 「공교 지회 통지서(孔敎支會通知書)」를 각지에 배포하였다. 1913년 11월 29일 2백여 명이 권학소(勸學所)에 모여 전국 공교회에 가입할 것을 결정하였다.
간도 공교회는 친일 유생에 대항하여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