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民聲報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신문 |
|---|---|
| 관련인물 | 관준언, 주동교 |
| 창간인 | 강위청 |
| 창간 시기/일시 | 1928년 2월 |
| 폐간|종간 시기/일시 | 1931년 |
1928년 2월 북간도 용정에서 발간된 민중 계몽형 신문.
1920년대 초 연변지역은 일제의 침투로 인하여 일제의 세력이 나날이 커져만 가는 형세였다. 192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일제가 경제, 무역, 의료,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주도권을 획득하였다. 또한 일제는 『간도시보』, 『간도신보』 등을 창간하여 여론을 통제하여 자신들의 침략을 미화하고 북간도 한인을 농락하였다. 이런 시국에 일제와 맞서고 한인들을 각성시키려는 의도에서 『민성보』가 창간되었다.
『민성보』는 일주일에 6일 출간하고 일요일에 휴간하였다. 중문과 조선문으로 된 큰 판면의 신문이었다. 모두 4개의 판면을 갖고 있는데 그중 1, 2면과 3면의 절반은 중문으로 되었고, 3면의 나머지 절반과 4면은 조선문으로 되었다. 일일 발행량이 2천 부 내외였는데 연변 여러 지역으로 발송되었다.
『민성보』는 제1면에는 국제 중요 뉴스와 광고, 제2면에는 국내 정치·경제·통신을 게재하였으며, 제3면에는 지방 소식 및 연재 소설, 제4면에는 문학 작품을 실었다. 그뿐만 아니라 민족 모순, 계급 모순에 대하여 사론·사회 조사·지방 통신 등 여러 가지 형식을 통하여 기사를 게재하였다. 한·중 양 민족의 단결을 역설하는 기사도 게재하였다.
『민성보』의 초대 총편집은 안희음이었으며, 제2대는 손좌민이었고 문예 책임은 주동교, 교정은 이별천이 맡았다. 1931년 9월 만주 사변 이후 정간되었다. 전체 직원 수는 60여 명에 달하였다.
『민성보』는 북간도 지역 한인을 대변하는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민족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민성보』는 민족 언론의 대변자로서 『간도신보』, 『간도일보』와 같은 친일 신문과 맞서 일제의 침략본질과 행위를 폭로 규탄하였다. 『민성보』는 1920년대 중․한 두 나라 민족 단결을 도모하는 데 있어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