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동은 연길도윤공서(延吉道尹公署) 외교부에 근무하던 한인 이동춘(李同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1910년대 후반 봉오동에 학교를 설립하고 반일 교육을 진행하였다. 최진동은 1919년 봉오동 지역 내 자위단 무장 세력을 토대로 군무도독부를 조직하였다. 그는 소작농 혹은 봉오동 지역 내 청장년을 모집, 선발하여 병력을 확충하고 무장력을 높이는 한편 군사 훈련을 강화하였다.
군무도독부는 1920년 3월과 5월 북간도 지역 항일 단체들의 연석회의 결정에 따라 안무(安武)의 국민회군(國民會軍),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광복단, 의군부 등과 연합하여 대한군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로 통합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군무도독부는 봉오동 근거지에 1920년 봄부터 병영과 훈련장을 건설하였으며, 매일 대원들이 군사 훈련을 하였다. 특히 최진동을 비롯한 간부들은 북간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진입 작전을 위해 많은 무기를 구입, 대원 개개인에게 지급하여 무장력을 높이는 한편, 대원들에게 무장 투쟁의 중요성을 인지시켜 봉오동 승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현황
군무도독부는 설립 초기 1개 대대와 4개 중대 200여 명으로 이루어졌다. 총재는 최진동(崔振東), 참모장은 박영, 대대장은 박춘승, 중대장은 김세종·조근식·강상모·강시범, 교련관은 변남길, 외교원은 김호석·엄진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군무도독부는 여러 단체와의 통합에 노력하였으며, 국민회 산하의 무장 부대인 국민회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 『개척』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1), 민족출판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