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청년단

한자 大韓 獨立 靑年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요령성 단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항일 무장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19년 3월
정의

1919년 3월 서간도에 설립된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

개설

대한 독립 청년단은 1919년 3월 안병찬(安秉瓚)을 비롯하여 대한제국군 출신 조재건(趙在健), 평양 숭덕학교 교사 함석은(咸錫殷), 지응진(池應晋), 박영우(朴永祐) 등이 3·1운동에 참여한 뒤 압록강은 건너 서간도로 망명하여 중국봉천성 안동현에 설립한 단체이다.

설립 목적

대한 독립 청년단은 직접적인 반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일제의 협력자를 처단하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변천

대한 독립 청년단은 1919년 9월경 안동현의 일제 경찰에 조직과 활동 상황이 탐지되었고, 안병찬을 비롯한 조재건·박영우 등 간부와 회원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안병찬이 병보석 중 탈출하여 다시 서간도로 망명하여 관전현(寬甸縣) 홍통구(弘通溝)에서 김승만(金承萬)·김시점(金時漸) 등과 더불어 대한 청년단 연합회를 조직하여 대한 독립 청년단은 발전적 통합을 이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 독립 청년단은 1920년 4월 정기 총회를 개최하여, 각 단에서 10명 이상의 의용군 대원 경비를 부담하기로 하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적으로 지지, 청년 의용대 별도 조직 등을 결의하였다. 국내에서는 평안도의주 청년단을 비롯한 10여 개 단체가 이에 동조하였다. 또한 대한 독립 청년단은 『반도청년보(半島靑年報)』를 발행하여 임시정부의 정책·정령(政令)을 선전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한 독립 청년단은 1919년 3·1 운동 직후 국외에서 조직된 청년 단체로서 주로 무장 투쟁을 지향하였다.

참고문헌
  • 김준엽, 김창순, 『한국공산 주의 운동사 4』(청계연구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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