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 청년 총동맹

한자 北滿 靑年 總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아성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청년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26년 5월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아성
정의

1926년 5월 북만주에서 조직된 청년 운동 단체.

개설

1925년 8월 5개 청년 단체가 북만에 모여 발기 총회를 개최하였다. 발기 총회에서는 “정치 압박과 경제적 착취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는 조직적 단결을 목적으로 하고 청년 운동의 통일을 꾀하기 위하여 강령을 정하고 북만 청년 동맹을 발기한다. 이에 공명하는 청년 단체들이여 가입하라. 굳게 단결하라.”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그 뒤 1926년 5월 북만주 아성(阿城)에서 창립 총회를 개최하고 북만 청년 총동맹이 정식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북만 청년 총동맹은 1926년 5월 창립총회 당시 다음과 같은 강령을 채택하였다. "첫째 계급적 및 조직적 단결과 청년 운동의 통일을 촉성하고 혁신 전선에 참가할 군중의 훈련 및 교양을 행한다. 둘째 일제 강점기 아래 현 사회를 타파하고 합리적 사회를 건설한다. 셋째 조선 민족의 해방과 사회 혁명의 수행을 기한다."

변천

1925년 8월 대진 청년회 등 5개 단체는 북만 청년 총동맹을 발기하였다. 그 뒤 1926년 2월에 열린 북만 청년 총동맹 창립대회 당시에는 아성 청년회, 프로 청년회, 대동 청년회, 동일 청년 연합회, 중동 철도 연선 조선인 청년 연합회 등 5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하지만 북만 청년 총동맹은 1930년 5월경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이 해체되면서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북만 청년 총동맹은 1927년 만주의 다른 청년 총동맹과 함께 1927년 8월 흑룡강성 해림(海林)에서 개최된 남북 청년 단체 대표 협의회에 참가하였다.이때 민족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통일과 국내 청년 운동과의 연락을 유지하는 문제를 협의하였다. 1928년 5월 북만 청년 총동맹은 길림성 화전현(樺甸縣)에서 개최된 정의부 외 18개 단체[촉성회파] 희의에 참석하였다. 북만 청년 총동맹은 대체로 표면 단체로서 활동하였으며, 비밀 결사 조직 활동은 하지 않았다. 창립 이후 간부들의 이합과 집산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황

북만 청년 총동맹은 회원 500여 명 규모의 단체였으며, 본부는 영안현(寧安縣)에 두었다.

의의와 평가

북만 청년 총동맹은 사회주의 사상이 간도를 비롯해 만주 지역으로 확산할 때 이를 받아들인 청년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에 북만 청년 총동맹은 1920년대 항일 운동의 한 방략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견지한 청년들이 자신들의 조직화된 운동을 구사하기 위해 조직한 표면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준엽, 김창순, 『한국공산 주의 운동사 4』(청계연구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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