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光韓團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항일 무장 단체 |
|---|---|
| 설립자 | 현정경, 현익철, 이시열, 이호원 |
| 설립 시기/일시 | 1920년 3월 |
| 해체 시기/일시 | 1922년 3월 |
| 최초 설립지 | 요령성 관전현 |
1920년 3월 한족회의 소장파들이 중국요령성 관전현에 조직한 무장 단체.
광한단은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에 기반을 둔 무장단체로 모험대를 조직, 국내 평안도와 황해도 등지에 대원을 파견하여 동지 규합, 군자금 모집, 격문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한단은 1920년 3월 요령성 관전현에서 조직되었는데, 1922년 3월 대한통군부에 통합되었다.
광한단은 1920년 8, 9월경 이시열·현익철 등의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해 오다가, 그해 12월경 단장 이시열의 중심 체제로 변화하였다. 광한단은 전국 218개 군의 각 면에 기관을 두어 동지를 배치하여, 폭탄과 단총으로 일거에 왜적의 군사기관, 행정기관을 파괴하고자 하였다.
광한단은 만주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국내에 거점을 마련하고자 대한독립단과의 연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남만주 유하현 삼원포에서 화서학파 계열의 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조병준(趙秉準) 등이 조직한 무장 단체였다. 광한단은 인적 구성과 정치적 방향 차이를 극복하고 대한독립단 군자금 모집장(募集長) 궁인성(弓寅聖)과 협력하였다. 광한단은 평안도를 중심으로 군자금과 단원을 모집하는 한편 경상도까지 단원을 파견하였다.
1921년 1월 국내 활동의 전모가 발각된 이후 단원들 대부분 체포되었다. 이로써 국내 활동이 중단되면서 광한단은 사실상 와해되었고, 서간도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이 추진되면서 대한독립단 등과 함께 대한통군부로 통합되었다.
광한단은 정치적 방향과 목적을 달리하는 단체와도 연합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2년 대한통군부에 통합되었지만, 그 출신들은 1930~1940년대에 조선혁명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