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光復軍 司令部 |
|---|---|
| 분야 | 역사/근현대 |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 지역 |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지치현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 성격 | 상해 임시 정부 군무부 직할 단체 |
|---|---|
| 설립자 | 조병준, 김승학, 조맹선 |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
| 최초 설립지 | 요령성 관전현 |
| 현 소재지 | 요령성 관전현 |
압록강 대안을 넘나들면서 일제 침략 기관을 파괴하는 데 설립 목적을 두었다.
1920년 일제의 독립군 학살 정책에 따라 일본군의 정면 대결을 피하기 위하여 군대를 벽지로 이동시켰다.
1920년까지 대적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며, 피아간 교전 횟수는 78회, 주재소 습격 56곳, 면사무소 등 방화가 20개소, 일경 사상이 95명이었다. 일제는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연안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등 광복군의 국내 진공을 막기에 애썼다.
광복군 참리부장은 조병준이, 협찬은 김승만이, 내무부장은 신우현이, 광복군 사령관은 조맹선이 맡았다. 관전현 중심의 광복군 사령부 병력으로는 6개 영에 소속된 3,800명의 군인이 있었다.
1920년대 서간도의 대표적인 무장 투쟁 단체로서 실질적으로 수많은 도강 작전을 펴 일본 침략 기관을 파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