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大蘇 末期 遺蹟 |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부유향 합전촌 화룡둔 |
| 시대 | 선사/철기 |
| 성격 | 유적 |
|---|---|
| 크기 | 300m[길이]|100m[너비] |
| 면적 | 30,000㎡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9년 6월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0년 6월 |
| 현 소재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부유향 합전촌 화룡둔 |
| 원소재지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부유향 합전촌 화룡둔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용정시(龍井市) 부유향(富裕鄕) 합전촌(蛤田村) 화룡둔(化龍屯)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의 유적.
대소 말기 유적은 용정시 부유향 합전촌 화룡둔에 위치해 있다. 동북쪽으로 부유향 소재지에서 약 9.5㎞ 떨어져 있다. 유적은 산간 작은 분지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기복을 이루는 산들로 이어져 있다. 동남쪽으로는 두만강과 약 0.5㎞ 거리에 있으며, 서남쪽 0.5㎞ 거리에는 대소(大蘇) 과수 농장 관리소가 위치해 있다. 관리소와 화룡둔 사이는 동서향의 원호형 개활지이며, 북측은 긴 구릉으로 이어져 있고, 주변은 완만한 언덕으로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소-용정 도로가 유적 북쪽 가장자리를 통과한다.
대소 말기 유적은 1979년 6월 상순 길림성 고고훈련반 제3대에 의해 첫 발굴이 이루어졌다. 발굴 지점은 유적의 서북쪽 모서리로 43.5㎡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 1기와 토기, 석기 및 철기 편이 출토되었다.
1980년 가을 길림성 문물고고공작대와 연변 박물관이 2차 발굴을 진행하였다. 전년도 발굴 지점의 동측으로 이어서 조사를 실시하였다. 정남북 방향으로 탐색 트렌치(80G1)를 설치하여 유구와 유물의 잔존 여부를 확인하였다. 조사 결과 트렌치 남쪽에서 잿구덩이[회갱(灰坑)] 1기가 조사되었으며, 소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소 말기 유적의 범위는 동서 약 300m, 남북 약 100m이다. 유적의 층위는 비교적 단순한데, 제1층은 표토층으로 회갈색이며, 두께는 21㎝이다. 제2층은 문화층으로 옅은 갈색이고, 두께는 51㎝이며, 다수의 유물이 출토된다. 집자리 역시 이 층에서 시작되고 있다. 제3층은 생토층이다.
집자리는 반움집 형태로 평면은 방형이고, 방향은 남편동(南偏東) 35°이다. 동·서·북 3면은 모두 생토면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면적은 대략 24㎡이다. 중앙의 노지(爐址)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일부에 일렬로 배열된 돌들이 놓여 있다.
노지는 11개의 괴석을 둥글게 놓아 만들고 있다. 집자리 중앙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괴석의 크기는 17∼29㎝이다. 주거지 북동쪽 모서리 부근에 대형 옹(瓮)이 한 점 놓여 있는데 옹 하부에 소토층(燒土層)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위로 대량의 탄재가 쌓여 있다. 노지 단면을 살펴보면, 제1층은 5.1㎝ 두께로 탄재가 쌓여 있으며, 제2층은 6.3㎝ 두께의 붉에 탄 소토[홍소토(紅燒土)]층이다. 제3층은 생퇴층이다. 아궁이의 입구는 남단에 위치해 있다.
집자리 바닥면은 황색 다짐토로 이루어져 있다. 조사 당시 내부에서 다량의 목탄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길이 1.2m, 너비 및 두께가 모두 0.1m인 길다란 막대 모양 목탄 하나가 노지와 옹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었다. 이 목탄은 지붕 가구에 사용된 목재로 추정되며, 집자리 내부에 잿더미 혹은 목탄이 쌓여 있은 것으로 보아 화재 주거지로 파악할 수 있다.
정리 조사 시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집자리 남측에 밝고 다녀서 단단하게 다져진 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 면에 출입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집자리 내부에서 다량의 토기가 확인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완형 혹은 복원이 가능한 것들로 어떤 것은 수직으로, 어떤 것은 가로로, 어떤 것은 거꾸로 뒤집어 놓여 있고, 어떤 것은 크고 작은 토기가 3·5겹으로 층층히 쌓여 있다. 토기는 대부분이 구들과 아궁이 동북쪽 모서리에 쌓여 있으며, 일부는 구덩이 서벽과 동남 쪽 벽면 부근에서 놓여 있다.
대소 말기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부분 태토에 모래가 혼입된 홍갈색 토기[夾砂紅褐陶]가 주를 이루며, 소량의 찰흙으로만 제작된 회갈색 토기[泥質灰褐陶]와 찰흙질의 흑색 토기[泥質黑陶]도 출토되었다. 토기는 모두 손 빚음으로 제작되었으며, 기벽은 두꺼운 편이다. 또한 기형이 불규칙하고 색이 고르지 않으며, 거칠게 제작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비교적 큰 기물의 경우 태토에 대량의 석영(石英)과 운모(雲母)가 섞여 있다.
기형적 특징으로는 구연부의 경우 대부분 벌어지거나[敞口] 오므라 들었으며[斂口], 지나치게 벌어진 것[侈口]은 드물다. 동체부는 대부분 비스듬하게 내려 오고[斜直]있으며, 볼록한 모양[鼓腹]은 극소수이다. 바닥은 모두 평저(平底)이다. 손잡이는 대부분 꼭지 모양의 홑 손잡이[單耳]이거나 둥근 기둥 모양이며, 넓은 고리 모양의 손잡이는 보이지 않는다. 문양은 확인되지 않는다.
토기 종류로는 취사에 사용되는 자비용기(煮沸用器)로 관(罐)과 시루(甑) 등이 있으며, 저장에 사용되는 옹(瓮), 음식을 먹고 마실 때 사용하는 발(鉢)·완(碗)·배(杯) 등이 있다. 이들 토기에는 꼭지 모양의 손잡이 혹은 둥근 기둥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수량은 옹(瓮) 4점, 관(罐) 11점, 완(碗) 4점, 호(壺) 1점, 시루(甑) 1점, 두(豆) 1점 등이다.
석기는 수량이 많지 않은데, 대부분 간석기이고, 뗀석기는 소량에 불과 하다. 종류로는 돌호미[石鋤] 1점, 절구공이[石杵] 1점, 돌 가락바퀴[石紡輪] 1점 등이 출토되었다. 골기는 골추(骨錐) 1점, 철기는 부식된 철기 잔편 5편이 확인되었다.
대소 말기 유적은 두만강 유역의 기타 유적과 동일하게 모두 하천 연안의 북쪽 대지 상에 입지해 있으며, 주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교해 보면, 연대는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되며,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대 옥저인들의 생활유적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