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취자 유적

한자 大山嘴子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대산취자진  
시대 선사/청동기
상세정보
성격 유적
크기 200m[길이]|60m[너비]
면적 12,000㎡
문물|보호단위등급 주 문물 보호 단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0년
문화재 지정 일시 1961년 1월 18일
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대산취자진
원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대산취자진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대산취자진(大山嘴子鎭) 동북쪽에 있는 청동기 및 발해 시대의 유적.

위치

대산취자 유적은 대산취자진(大山嘴子鎭)[현재 안명호진(雁鳴湖鎭)] 소재지의 동북 방향 0.5㎞에 자리한 언덕의 남쪽 비탈 위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호수에 연접해 있으며, 동쪽은 완만산 산으로 이어져 있다. 남쪽으로 500m 거리에는 목단강이 흐르고 있다.

형태

대산취자 유적은 19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문물조사대에 의해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80년대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위가 높아져 재조사를 실시하였다. 유적 범위는 남북 길이 200m, 동서 너비 60m로 면적은 대략 12,000㎡ 정도이다. 유적 내에서 다량의 토기 편이 확인되며, 상층에서 수습된 유물들은 대부분 발해 시기에 해당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 아래 65∼90㎝는 잿층[회층(灰層)]이며, 그 아래 90∼105㎝는 문화층으로 다량의 토기 편이 끼어 있다.

현황

대산취자 유적은 이미 많이 파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댐 건설 과정에서 수몰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대산취자 유적에서는 1960년 조사시에 갈판[磨盤]·관(罐)·돌도끼[石斧] 등이 수습되었으며, 1980년대 조사에서는 완형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유적 곳곳에서 확인되는 토기 편은 태토에 가는 모래가 혼입된 [협사세질(夾砂細質)]의 홍갈색과 회색 토기가 주를 이룬다. 홍갈색 토기가 다수를 차지하며, 기표면을 문질러 광택을 내고 있으며, 문양은 일반적으로 민무늬이며, 소량의 토기에 현문(弦紋)이 새겨져 있다.

제3층 문화층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부분 잔편으로 재질이 거칠고, 소성온도가 높지 않으며, 대부분 바닥이 편평[平底]하고 유두 모양의 손잡이[유두상이(乳頭狀耳)]가 달려 있다. 이밖에도 다량의 토제 어망추가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산취자 유적 하층에서 출토된 토기는 주변의 소산취자(小山嘴子)와 흑룡강성 목단강 중하류 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들과 제작기법과 기형면에서 유사하다. 토기는 태토에 굵은 모래 혹은 가는 모래가 혼입되어 있으며, 대부분 민무늬이다. 소량의 토기에 현문(弦紋)이 장식되어 있다.

토기의 기형을 통해 보면 흑룡강성 영안현(寧安縣)앵가령(鶯歌嶺) 출토 유물과 매우 유사하여 일부에서는 숙신족의 생활유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은 주로 수렵과 어로 생산 활동에 종사하였다. 유적에서 발견된 갈판과 돌도끼 및 대량의 토기 편은 당시 일정한 규모의 농업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敦化市 文物志』(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主編, 1985)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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