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산 유적

한자 南團山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춘화진 대육도구촌  
시대 선사/신석기
상세정보
성격 유적
면적 약 5,000㎡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2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3년 7∼8월
현 소재지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춘화진 대육도구촌
원소재지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춘화진 대육도구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 춘화진(春化鎭) 대육도구촌(大六道溝村)의 남단산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위치

남단산 유적은 혼춘현(琿春縣)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87㎞ 거리의 혼춘하(琿春河)와 대육도구하(大六道溝河)가 합류하는 곳의 남단산에 위치해 있다. 남단산은 하천가에 솟아 있는 작은 산으로 높이는 지면에서 약 30m정도이며,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하다.

주변으로 높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동·서·남쪽 삼면에는 강과 하천이 흐르고 있다. 서북쪽으로 대육도구둔(大六道溝屯)과 1㎞ 정도 거리에 있으며, 동쪽과 남쪽은 혼춘하 충적이 형성된 좁고 긴 평지이며, 대육도구하는 남단산 서쪽 기슭을 지나 혼춘하로 유입된다. 혼춘-춘화 도로가 유적지 남쪽으로부터 약 50m 지점을 통과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남단산 유적의 정상부 면적은 동서 80m, 남북 약 60m이다. 동·남·북 삼면은 경사도가 심하며, 서쪽은 비교적 완만하다. 현재 남단산 유적은 나무가 빽빽하게 조림되어 있고 잡초가 무성하게 덮여 있다.

1972년 길림성 박물관에서 남단산 유적에 대한 시굴을 실시하여, 『길림 훈춘 남단산·일송정 유적 조사(吉林琿春南團山·一松亭遺址調査)』보고서를 출간하였다. 1973년 7월 길림성 박물관에서 다시 남단산 유적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6기의 선사 시대 주거지를 발굴하였다.

유적 층위는 지표층은 회색 부식토로 두께가 약 15cm이며, 그 아래는 제1층으로 모래를 함유한 황회색층(黃灰色層)이며, 두께는 약 10cm이다. 제2층은 무른 황색사토층(黃色沙土層)으로 두께가 약 20∼50cm이며, 주거지가 조성되어 있다. 최하층은 생토층에 해당된다.

남단산 유적은 산 동남쪽 가장자리 72T4 탐색 트렌치(Trench)와 서북쪽 정상부의 주거지 구역으로 구분되며, 조기(早期)와 만기(晩期) 유적을 대표한다. 72T4 탐색 트렌치에서는 바닥면만 남은 주거지 한 곳이 확인되었으며, 바닥 중앙에 직경 약 1m 정도의 불에 탄 소성토(燒成土)가 남아 있다.

서북쪽의 6기 주거지는 모두 얕은 움집으로 평면은 방형·장방형·불규칙형 등으로 구분된다. 주거지 깊이는 일반적으로 3∼5cm이다. 장방형은 장변(長邊)이 약 7m, 단변(短邊)이 약 5m이다. 방형의 한 변의 길이기 약 4m 정도이며, 불규칙형은 대부분 소형이다.

방형과 장방형의 모서리에는 크기가 다르고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기둥 구멍이 확인되며, 불규칙형은 주거지 중앙에 원형의 기둥 구멍이 설치되어 있다. 주거지 내부에는 불에 탄 소성토 흔적만 확인된다. 주거지의 출입시설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이 밖에도 토기 가마터(窯址) 1기가 발견되었는데 가마는 구덩이를 반구형으로 파서 만들었다. 노천(露天) 소성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출토 유물

72T4 탐색 트렌치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석기와 토기 등이 있다. 석기는 모두 뗀석기로 응회암을 사용하였으며, 종류로는 돌창[石矛]·돌화살촉[石鏃]·어망추[網墜] 등이 있다. 이밖에도 다량의 흑요석 편이 출토되었는데, 대다수가 2차 가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일부만 사용한 흔적이 확인된다.

토기는 모두 잔편들로 소성 온도는 비교적 낮고, 태토에 모래가 혼입된 홍갈색 토기와 갈색 토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대부분 민무늬이며, 후자는 침선문(沈線文)과 압인문(壓印紋)이 장식되어 있다. 침선문은 주로 평행사선과 오목하게 들어간 대추씨 형태[棗核狀], 인자형(人字形) 등이 있다. 압인문은 가로 방향으로 조밀하게 배열한 작고 오목한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류로는 곧은 입술[直脣]의 소형 관(罐), 통형관(筒形罐), 완(碗), 발(鉢), 배(杯) 등이 있다.

주거지 출토 유물 역시 석기와 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석기는 뗀석기 위주이며, 응회암을 사용해 제작하였다. 종류로는 돌도끼[石斧]·돌삽[석호(石鎬),석서(石鋤)]·돌창·돌화살촉과 다량의 불규칙한 석편(石片) 등이 있다. 또한 대석편(大石片) 혹은 자갈돌[礫石]을 떼기로 만든 자르개[砍伐器]·밀개[刮削器]·어망추[網墜]· 거친 대형 갈판 1점 등이 있다. 가늘고 작게 눌러 땐 석기로는 흑요석 밀개와 찌르개[첨상기(尖狀器)], 사용흔이 남아 있는 불규칙한 작은 석편(石片) 등이 있다. 이밖에도 소량의 부싯돌[燧石]과 유문암(流紋巖)으로 제작한 세석기(細石器)가 출토되었고, 몸체 한 면을 길게 다듬은 형태[長條形]의 변인기(邊刃器) 등이 있다.

집자리 출토 유물에는 응회암 석재로 만든 타제의 석부(石斧)·석호(石鎬)[석서(石鋤)]·모(矛)·촉(鏃)·대량의 불규칙한 석편(石片) 등이 있다. 또한 대석편(大石片)과 자갈돌[礫石]로 만든 타제의 벌목기(砍伐器)·괄삭기(刮削器)·어망추(網墜)·아주 거친 대형 갈판 1점 등의 출토 유물이 있다. 가늘고 작게 물러 땐 석기로는 흑요석 괄삭기와 첨상기(尖狀器), 사용 흔적을 지닌 불규칙한 작은 석편(石片) 등이 있다. 또한 몇 점의 부싯돌(燧石)과 유문암(流紋巖)으로 제작한 세석기(細石器)가 발견되었고, 괄삭기와 전체가 눌려 다듬어진 장조형의 변인기(邊刃器) 등이 있다.

유적에서 수습한 석기로는 편평한 큰 자갈돌로 만든 다듬이돌[石砧]과 방망이 모양[棒狀]의 석추(石錐)가 있으며, 다듬이돌의 한 면과 추(錐)의 끝에 모두 사용흔이 남아 있다.

토기는 모래가 혼입된 협사 홍갈색이 다수이며, 표면을 문질러 광을 내고 있다. 소성 온도는 비교적 낮은 편이며, 출토 당시의 색은 붉은색에 가까웠다. 기형은 비교적 단순한 편으로 구연(口沿)이 크고, 바닥이 편평하며, 몸체가 통형(筒形)인 옹(瓮)·관(罐)·배(杯)·완(碗)·발(鉢) 등이 있다. 손잡이는 혹 모양(瘤狀)과 짧은 혀 모양(短舌狀)의 가로 방향 손잡이 두 종류가 있다. 문양은 대부분 민무늬이며, 일부 음각된 평행 사선의 돗자리[席花形]·나뭇잎 줄기[葉脈形]·인자형(人字形) 등과 오목하게 들어간 대추씨 형태[棗核狀]가 있다.

의의와 평가

남단산 유적에서 확인된 두 구역의 유적은 동일 문화 유형에 속한다. 72T4 탐색 트렌치 내의 유적은 시간이 비교적 이르고, 주로 수렵·어로 생활을 영위하였다. 주거지 유적은 시기가 조금 늦으며, 정착 생활과 더불어 농업이 이루어졌으나 수렵·어로 및 채집이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남단산 유적의 연대는 주거지 출토 목탄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BP 2,200년에 해당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돌을 사용하여 축조한 노지(爐址)가 없는 주거지, 응회암제 뗀석기, 눌러떼기로 제작된 흑요석 세소석기(細小石器), 문양이 장식된 협사질의 홍갈색 토기, 청동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이 유적의 시기를 신석기 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늦어도 신석기 시대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 『琿春縣文物志』(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198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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