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유적

한자 岐新 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진 기신촌 창신평  
시대 선사/신석기
상세정보
성격 유적
크기 150m[길이]|100m[너비]
면적 약 15,000㎡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 4월
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향 기신촌 창신평
원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월청향 기신촌 창신평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도문시(圖們市) 월청향(月晴鄕) 기신촌(岐新村)창신평(昌新坪)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위치

기신 유적은 월청향 기신 6대(隊) 서남쪽 1㎞ 지점에 위치하며, 동북쪽으로 월청향 소재지와 2.5㎞ 떨어져 있다. 기신촌의 창신평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여 '창신평 유적'으로도 불린다.

유적의 남쪽으로 돌출된 낮은 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동쪽과 서쪽은 비교적 낮은 편이며, 북쪽은 산 능선과 이어져 있고, 능선에는 텔레비전 중계탑이 건설되어 있다. 두만강이 유적의 동남에서 동북으로 흐르고 있으며, 유적은 강보다 약 30m 정도 높은 곳에 입지해 있다.

형태

기신 유적은 1985년 처음 발견되었는데 문화층의 두께는 80cm이다. 도문(圖們)-개산둔(開山屯) 도로가 유적 중앙부를 관통하며, 도로 양측의 경작지 개간으로 인해 유적지는 훼손되어 있다. 동서 100m, 남북 150m 범위 내에서 대량의 침선문(沈線文) 토기 편과 석기 등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유적의 서부, 도로 우측의 단면상에서 반움집 형태의 주거지 1기가 노출되어 있다. 주거지는 표토층 아래에서 시작하여 생토층을 파고 들어가 축조되었다. 주거지의 깊이는 50㎝이다.

현황

기신 유적은 1985년 4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 문물조사대의 문물 조사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당시 채집된 유물은 석기 7점, 토기 18점 등 모두 25점이다. 석기는 대부분 잔편이나 일부 기형이 확인되는 것으로는 갈판[磨盤] 1점, 갈돌[磨棒] 1점, 소형 고리형 석기 1점, 석도(石刀) 1점, 호미[石鋤] 1점, 밀개[괄삭기(刮削器)] 2점 등이다. 토기는 모두 잔편으로 구연부(口沿部) 9점, 침선문 토기 편 8점, 바닥[저부(底部)] 1점 등이다.

석기는 갈판[磨盤], 갈돌[磨棒], 작은 고리형 석기 등을 제외하고 모두 뗀석기[타제(打製)]이다. 토기는 태토에 모래가 혼입된 협사도(夾砂陶)가 주를 이루며, 태토로 진흙만 사용한 니질도(泥質陶)도 다수 확인된다. 토기 색은 모두 갈색과 적갈색으로 노천요(露天窯)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토기 표면에는 대부분 문양이 장식되어 있는데, ‘人’자형 침선문, 대추씨 모양의 착압문(戳壓紋), 불규칙한 침선문[劃紋], 현문(弦紋)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연변조선족자치주 안에서 기신 유적과 동일한 문화 내용을 가진 유적은 지금까지 10여 곳에서 확인되었다. 대표적으로 용정현 덕신향금곡댐 서산 유적, 광신향비암산 유적, 혼춘현 춘화향남단산 유적, 왕청현 부흥진부흥 삼장 유적, 화룡현 동성향흥성 2대 유적, 연길시 흥안향 동흥촌대돈대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금곡댐 서산 유적지에서는 6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토기·석기·골기 등의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 이들 문화 유적의 표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서산 유적의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4,500년경이다. 기신 유적의 경우 출토 유물이 금곡댐 서산 유적 출토 유물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동일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두 유적의 연대 역시 비슷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들 유적의 분포 범위는 남으로 북한함경북도에 이르고, 동으로는 동해에 이르고, 북으로는 흑룡강성 동녕현, 서로는 합이파령(哈爾巴嶺)을 넘지 않는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바로 이 유적 분포의 중심 지구이다. 기신 유적의 발견으로 도문시 선사 문화의 공백을 메워 주었다.

참고문헌
  • 『圖們市 文物志』(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主編, 1985)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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